나는 타고난 거짓말쟁이다.
어려서부터 내게 거짓말이란 식은 죽 먹기였다.
쇼핑 카트에 과자 몰래 넣어놓고 모르는 척하기. 냉장고의 누나 아이스크림 냉큼 먹어버리고 아닌 척하기 등.
이런 거짓말쟁이 계의 떠오르는 신성인 내가,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거짓말의 법칙에 대한 팁을 공유하겠다.
거짓말의 법칙을 설명하자면,
첫째, 거짓말은 우선 ‘그럴 듯’, 해야 한다.
‘그럴 듯’이라고만 말하면 쉬이 감이 안 올 수 있기에 말을 덧붙이자면, 거짓말도 이야기이기에 ‘개연성’이 중요하다. 다음 두 예시를 통해 이 ‘개연성’에 대해 설명하겠다.
1. 나 이번에 로또 1등 당첨돼서 21억 수령해.
2. 나 이번에 로또 2등 당첨돼서 4000만 원 수령해.
다음 예시 중 무엇이 더 믿음이 갈까. 당연, 후자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개연성’이다.
1등 또한 당첨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후자의 경우 또한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좀 더 ‘그럴 듯’하고 어쩌면 될 수도 있어 보이기에, 우리는 그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이처럼 사람들의 안에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범위’가 있고, 그 허용범위가 바로 ‘개연성’이다.
거짓말을 할 때, 절대로 ‘개연성’을 잊어선 안 된다.
거짓말의 법칙 둘째, 100% 농도의 거짓말은, 도리어 좋지 못한 거짓말이다.
거짓을 말할 때, 모든 말이 거짓이라면 들키기 쉬울뿐더러, 내가 거짓말로 가리고자 했던 부분이 상대의 눈에 띄게 된다. 거짓말할 때,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사용해야 한다. 소맥을 만들 때 소주와 맥주의 황금 비율이 있듯이, 거짓을 만들 때도 황금 비율이 존재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거짓말을 진실 속에 숨기는 것이다. 다음은 그 예시이다.
어느 날, 누나가 자기 마카롱이랑 아이스크림을 먹었냐고 화내었다. 그 말에, 아이스크림은 내가 먹었다.
미안하다. 근데, 마카롱은 진짜 안 먹었고 모르겠다고 답하였다.
누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지금 나가서 아이스크림이나 빨리 사 오라고 지시했다.
나는 투덜거리며, 쪼잔하게 아이스크림 가지고 난리네, 하면서 나갔다.
사실, 마카롱도 내가 먹었다. 나는 가격이 싼 아이스크림이란 ‘진실’과 가격이 비싼 마카롱이라는 ‘거짓’을 통해, 내가 속이고 싶었던 사실을 속였다. 이것이 거짓말의 황금 비율이다.
덕분에 난 비싼 마카롱은 안 사주고, 하드 바 아이스크림 하나로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타고난 거짓말쟁이인 나는, 최고의 거짓말쟁이가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거짓’이라는 ‘나’와는 반대급부인 ‘진실’에 대해서도 철저히 치킨의 살코기를 발라내듯이 분석하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던가.
‘진실의 법칙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 죽일 듯이 달려들었고 종국엔 답을 알아냈다.
‘진실의 법칙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진실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이었다.
진실에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짓의 탄생은 그 뿌리부터가 상대를 속이고 말겠다는 의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기에, 상대가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만들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진실의 목적은, ‘진실’ 그 자체로 목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실이기에, 무엇이 더 필요하지는 않다.
이런 이유로 거짓보다, 진실은 도리어 믿기 어렵다. 거짓은 목적에 충실해서 ‘개연성’이 탄탄하다.
사람들은 ‘개연성’이 탄탄한 ‘거짓’은 손쉽게 받아들인다. 그들의 허용범위는 ‘거짓’을 허락하고 결국 ‘거짓’은 ‘진실’로서 받아들여진다.
진실을 사람들이 믿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은, 문장의 성립부터 오류가 발생한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보여주었는데, 그 진실을 믿도록 만들기 위해 진실을 보여준다. 이미 어불성설이다.
방금 내가 로또에 당첨돼 21억을 수령할 예정이라는 말은 진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믿지 않는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걸 증명할 진실을 가져오라고 한다.
내 ‘진실’이 ‘그럴 듯’, 하지 못하기에, 그들 안에서는 이미 ‘진실’을 ‘거짓’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개연성’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연유로, 거짓말보다 ‘그럴 듯’, 하지 못하기 연유로.
우리가 믿는 이야기가 과연 진실일까. 우리가 믿지 않는 이야기가 과연 거짓일까.
우리가 믿고 있는 이야기가 거짓이고, 우리가 믿지 않는 이야기가 진실이지 않을까.
진실이란 거짓말보다 거짓말 같다.
사람들은 진실을 믿지 않는다.
‘개연성’이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목소리 높여 호소하여도, 믿지 않는다.
그들이 진실에 대해 하나하나 토해내도, 믿지 않는다. 개연성이 없기에.
목 놓아 호소해도 ‘개연성’ 부족이라며 단칼에 잘라낸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는 거짓말을 일삼는다. 그들은 거짓말의 두 번째 법칙을 충실하게 따랐다.
거짓과 진실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자신이 속이고자 하는 부분을 속인다.
호소하는 이들의 말이 일정 부분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과장된 것'이라고 교묘하게 말을 바꾼다. 호소하는 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간다. 텍스트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한다.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고, 거짓을 진실로 만든다.
결국 더 많이 믿는 쪽이 ‘진실’이 된다는 ‘거짓’의 법칙에 의거해서.
거짓을 말하는 이의 입에서는 독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독가스가 우리의 코를 찌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사실을 속인다.
이 냄새는 사실 독가스가 아니라, 향수라고.
우리는 그 말을 믿는다.
거짓을 말하는 이가 물에 독을 타서 건네준다.
물에서 진득한 독극물 맛이 우리 입 안에 퍼진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사실을 속인다.
그건 독극물이 아니라, 미네랄이 풍부해서 느껴지는 맛이라고.
우리는 그 말을 믿는다.
‘그럴 듯’하고, ‘개연성’이 탄탄하기에.
그렇게 독가스에 서서히 질식되어 가고, 독극물에 몸이 마비되어 간다는 ‘진실’은,
내 순전한 착각이라는 ‘거짓’이라 느낀다.
진실에 ‘개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그 이름 자체로 개연성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을까. 진실 혹은 거짓.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싶은 것일까. 진실 혹은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