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없는 첼리스트, 케첩 없는 볶음밥

사랑의 공식

by 아니아즈



사랑이란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 사랑 이외의 것에 대해 내게 묻는다면,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간 골똘히 고민 후 답할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묻는다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사랑은 어려워!'라고 칠 것이다.


전혀 다른 두 개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어디 쉬울까.

당장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국이란 나라만 보아도, 둘 사이의 깊은 골짜기를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두 대상이 하나가 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가 되어가는 사랑.

이 사랑의 과정에서 두 사람은, 첼로와 케첩만큼의 차이가 있다.

내가 첼로면 상대는 케첩이다. 내가 케첩이면, 상대는 첼로이다.

서로 연관성이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두 사람에겐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첼로라면, 상대는 바이올린 정도는 되길 바란다.

내가 케첩이라면, 상대는 마요네즈 정도는 되길 바란다.


사랑이란 요구일까. 사람 사이의 관계엔 명확한 답이란 것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요구라는 공식으로는 사랑이라는 식이 성립될 수 없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있어서 외계인이라고 말한다.

화성인과 금성인은 만나서 서로 대화를 나눈다. 각자의 언어를 사용해서.

그리곤 상대와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에 그 책임을 떠넘긴다.

이 두 외계인이 소통하기 위해선 결국, 누군가는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습득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상대가 나를 위해 자신의 언어를 이해하고 습득하기를 바란다.


상대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상대의 진심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를 시험에 들게 하고,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상대에게 실망한다.

그리고 상대를 시험에 들게 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상대에게는 얘기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상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험에 들고,

그 시험에 떨어지고, 시험에 떨어진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왜 사랑이 눈에 보여야만 하는 것일까.

사랑이란 애당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하고자 하는 행위가 이상한 것이다.

사랑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상대 먼저가 주는 게 아닌, 내가 먼저 주는 것이며, 사랑이란 것은 순환이다.


상대가 첼로이길 바라는 것이 아닌, 내가 상대의 케첩이 될 순 없을까.

상대가 케첩이길 바라는 것이 아닌, 내가 상대의 첼로가 되어줄 순 없을까.

내가 준만큼, 상대에게 오는 것이고, 상대에게 오는 만큼, 내게 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 내가 상대의 첼로가 되어도 나를 연주해 줄 첼리스트가 없다.

시간이 흐른 후에, 내가 상대의 케첩이 되어도 내가 뿌려질 볶음밥이 없다.

그 순간, 순간에 서로에게 진심일 수 있어야,

내가 상대의 첼로가 될 수 있고,

내가 상대의 케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답이 없지만, 사랑이란 식이 성립되게 만드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


사랑은 이해가 아닌, 공감이다.


이해는 머리로 하는 것이고, 공감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내가 첼로고 상대가 케첩이라고, 내가 화성인이고 상대가 금성인이라고 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의 선이란 것은 결국 사람들이 그어놓은 것이다.

이 선을 지울 수 있는 것도 사람이다.

그 선이 사라지면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당연히 어렵다. 어렵기에 그 과정에서의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가치가 있다.

첼로 있는 첼리스트와, 케첩 있는 볶음밥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랑은 가치가 있다.

keyword
이전 05화아이에,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동화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