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이야기 셋, 텐진과 나카스 강변
늘 다니던 일터는 차가운 회색 얼음 대지.
허공에 떠 있는 수많은 눈초리의
새까만 동굴에서 벗어나야만 해.
드디어 자유를 찾아
알록달록한 환상의 세계로
떠날 채비를 하자.
그곳은 내가 그리는 환상의 도시이자,
꿈꾸는 세계의 언덕 위.
기어이 자유의 깃발을 꽂고야 말테이니...
덕질을 탐방하는 자에게
후쿠오카의 텐진은 푸근한 주인장 아주머니.
인심 좋게 넉넉히 내어주는 상점만 같았다.
근거리에 덕질을 위한 것들이
즐비되어있으며,
배고픈 자에게 안성맞춤 맛집들도 가득했다.
오타쿠는 후쿠오카가 참 좋았다.
나는 특별히 대단한 오타쿠는 아니다.
그저 소소하게,
그때그때마다 사랑에 빠질 애니메이션을
찾아 나선다. 잠시 동안이지만,
온종일 푹 빠져들었다.
만화 속 캐릭터를 사랑할 때면.
그의 모든 것을 파헤쳐 다녔다.
일본이란 나라는 가히 신기한 곳!
특히 만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화가 떠오르면,
어김없이 그 만화 속 캐릭터들과
관련된 굿즈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결같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지갑을 열지 않고서야 못 배기게 만들었다네.
이런 것들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아마 일본이겠지.
24년 9월,
나의 사랑스러운 캐릭터 굿즈를 가지기 위해
후쿠오카 텐진의 '애니메이트'상점으로 향했다.
이유는 즉, 여름 한 동안 좋아했던
‘블루록’ 축구 서바이벌 만화 때문이었다.
하얀 머리칼과 눈부신 외모장착,
늘 졸린 눈매에 느슨한 말투를 가진 그는
축구 천재 ‘나기’ 군.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를 몹시 사랑하였다.
그러니 후쿠오카로 여행 준비를 할 때에는
캐리어의 한쪽 칸을 비워둬야만 한다.
물론 비어진 그 한 칸을 모조리 나기 군 굿즈를
잔뜩 담아 올 생각이었기에,
"신나는 마음만 챙겨놓아! 잔뜩 채워올게!! 내 사랑."
라며 텅텅 비어, 가벼운 캐리어를 들고
나의 낙원으로 데려다줄 공항으로 향했다.
그 이후 말이야.
내 사랑은 너무나도 깃털같이 가벼워,
흔들림이 쉬웠다네.
이내 시들해버린 마음은 흑백 세계, 순정 만화책이
눈과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버렸다.
24년 11월, 종이 만화책 수집을 시작한다.
대게는 한국에서 발행된 만화책을
사 모아서 모두 읽었는데,
한국에서 발행된 만화책의 뒷내용이
너무 궁금하여 좀이 쑤셨다.
기여코 다음 화의 원서를 찾기 위해
덕질 원정에 나섰다.
또한 귀여운 가챠가챠(뽑기)는
소소행복 덤일 테니. 우흣.
25월 1월. 나는 참으로 한탄하였네.
"왜 ‘하이큐’라는 명작을
이제서야 알아본 것이냐고..."
주의에서 추천작으로 늘 소개받았지만.
알지 않은가! 너무 유명하다면,
어쩐지 부담스러워 꺼려지는 마음.
허나 한번 발들여, 마음까지 내어준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랑의 블랙홀에
스스로 자처하여 들어가는 꼴이 되고야 만다.
그랬다. 겨울에는 내내 하이큐~! 를 외치며,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을 모두 읽어버렸다.
주황색 머리의 ‘히나타 쇼요’ 군은 너무 귀엽고,
‘카게야마 토비오’ 군은 새침하니
둘의 케미를 아니 사랑할 수 있으려나!!
나는 2박 3일의 여행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들을
애니 굿즈나, 만화책을 볼 수 있는 텐진의 상점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사랑이 너무 가벼워, 마치 갈대처럼 쉽게 요동치다니.
이제 모두를 사랑한다~라며,
박애주의자라도 외칠 작정이었다.
세 번의 후쿠오카를
오타쿠 여행으로 내리 다녀오니,
방 안은 온통 캐릭터들로 넘쳐났다.
"어휴… 감당이 안 돼."
뭔가 씐 것이 분명하다. 잠깐 미쳤던게지.
그렇다고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넘치는 그 사랑들을
잠시 절충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후쿠오카의 덕질 기억은 그런 것이었다.
잠시 지루하고 퍽퍽한 계란 노른자에 목멘 현실
나의 사랑스러운 만화라는
사이다를 콸콸 부어 시원하게 뚫어 주던 것.
다만, 그뿐 현실을 잠시 외면하고자
가장 큰 일탈의 선물과도 같았을까나.
텐진에서 양손 가득 한국으로
넉넉히 들여옴 허락하고 난 뒤,
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해
나카스 강변 근처 '이치란 라멘'에서 허기를 채웠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니...
반짝이는 밤의 불빛.
낭만스러운 나카스 강변을 보고자 했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모든 것을 가지고 이룬 자.
흡족하여 히죽히죽 웃어버렸다.
내일은 어쩜 후회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이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은
잠시 누려도 괜찮지 않은가?
그것이 단지 물건으로 채워진 마음이기만 했겠는가?
아니다. '스스로 행복해지고자 열중한 마음'
이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 나의 후쿠오카는 그런 곳이었다.
덕질이란 그런 것 같아요.
매일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답답한 일상에
한줄기의 빛 같기도,
가끔 나만 열어볼 수 있는 웃음보따리 같기도
했을 테니 말이죠.
지금도 하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네! 그러나 덕질대신
제삶을 좀 더 들여다보는 것에 몰입 중이랍니다.
by @kimbada4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