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디 – 제국의 점성술사
초월 충동은 세계를 넘어서는 충동이기도 하지만,
세계 그 자체를 다시 쓰려는 충동이기도 하다.
존재 불안은 인간을
초월 너머로 이끌기도 하지만,
존재의 패턴을 새로 짜려는
야망적 초월 충동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존 디(John Dee, 1527–1609)는
이 야망적 초월 충동을
가장 정교하고 복합적으로 구현한 존재였다.
그는
학자, 점성술사, 마법사, 외교관, 미래 설계자였으며,
초월 충동과 권력 충동이 교차하는
경계에 선 존재였다.
존 디는 16세기 초,
종교 개혁과 정치적 불안정이 뒤섞인
영국에서 태어났다.
16세기 영국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였다 [^36]:
- 헨리 8세의 종교개혁(1534)과 가톨릭-개신교 갈등
- 대학살(1553-1558)로 불리는 메리 여왕의 종교적 박해
-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1558)와 종교적 타협 시도
- 스페인과의 패권 경쟁과 무적함대 격파(1588)
-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마법적-신비주의적 세계관의 공존
* 헨리 8세의 종교개혁(1534년),
대학살(1553-1558), 엘리자베스 1세 즉위(1558)
헨리 8세의 종교개혁(1534년)은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헨리 8세는 아들을 얻기 위해 캐서린과의 결혼 무효를 교황청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1534년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선포해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 됨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원을 해산하고, 교회 재산을 몰수하는 등 정치적·경제적 조치도 단행했으며,
잉글랜드 내에서는 교황의 권위와 간섭에 대한 반감, 민족적 자존심, 그리고 이미 퍼져 있던
종교개혁 사상의 영향이 배경이 되었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헨리 8세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6세 시기에는
신교적 개혁이 강화되었으나,
메리 1세 때에는 가톨릭 복원이 시도되어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박해가 벌어졌다.
메리 1세(재위 1553~1558)의 통치 기간 동안 벌어진 ‘대학살’ 또는 ‘마리안 박해(Marian Persecutions)’는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혹독한 종교적 탄압으로 기록된다.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 시기에 확산된 개신교(프로테스탄트)를 뿌리 뽑고 가톨릭 신앙을 복원하려 했던 메리 여왕은 즉위 초반에는 관용을 표방했으나, 1554년 이단법(Heresy Acts) 부활 이후 본격적으로 개신교도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1555년부터 1558년까지 약 280명의 개신교 신자, 성직자, 평신도가 ‘이단’ 혐의로 체포되어 대부분 화형에 처해졌으며, 이 중에는 주교, 신학자, 여성과 평신도도 다수 포함됐다.
이 박해는 공개 화형이라는 극단적 형벌로 이루어졌고, 신앙을 버리면 살려주겠다는 ‘회개 또는 화형(turn or burn)’의 선택을 강요했다.
메리 여왕의 종교적 박해는 오히려 개신교 신앙을 강화시키고,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는 별명을 남기며 잉글랜드 내 반가톨릭 감정과 종교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이후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면서
1559년 ‘종교 회복법(Act of Uniformity)’을 통해 성공회(영국 국교회)를 공식화하고
종교적 통합을 도모했으나,
여전히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긴장과 갈등은
남아 있었다.
이러한 종교적 대립은 이후 영국 내전 등 정치·사회적 갈등의 한 원인이 되었으며,
잉글랜드의 종교 풍토와 국가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스페인과의 패권 경쟁과 무적함대 격파(1588)
1588년 스페인과 잉글랜드(영국) 사이의 무적함대(Armada) 격돌은 유럽 해상 패권의 향방을 결정지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스페인은 펠리페 2세의 주도로 ‘무적함대(Grande y Felicísima Armada)’라 불린 약 130척의 대함대를 조직해,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이끄는 잉글랜드를 침공하고 가톨릭 신앙을 복원하려 했다. 이에 맞서 영국은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호킨스 등 명장들이 이끄는 소규모이지만 기동성과 전술에 강한 해군으로 대응했다.
1588년 7~8월 칼레 해전(Battle of Gravelines)에서 영국 해군은 화공선 등 새로운 전술을 활용해 스페인 함대를 분산시키고 큰 타격을 입혔다. 이후 스페인 함대는 기상 악화와 보급 부족, 북해의 거친 바다에서 추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으며, 약 130척 중 54척만이 본국으로 귀환했다.
이 무적함대의 패배는 단순한 해전의 결과를 넘어 유럽의 정치·종교·군사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스페인은 이 패배로 해상 패권과 유럽 내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고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영국은 해상 강국으로 부상해 이후 대서양과 세계 해양 진출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이 사건은 가톨릭 대 프로테스탄트라는 종교적 대립 구도에서도 영국의 독자적 노선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의 세력 확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마디로 무적함대 격파는 근대 해양 제국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전환점이었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마법적-신비주의적 세계관의 공존
16세기 영국에서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마법적·신비주의적 세계관이 긴밀하게 공존했다.
이 시기 자연의 숨겨진 원리를 밝히려는 시도는 실험과 관찰, 수학적 탐구와 함께 연금술, 점성술, 신비적 의례 등 다양한 ‘마법적’ 방법론과 뒤섞여 있었다.
대표적으로 존 디(John Dee)는 수학, 천문학, 지도 제작 등 과학적 연구와 더불어 점성술, 연금술, 천사와의 교신 등 오컬트적 실천을 병행했으며, 그는 수학이 신비와 자연, 초월적 세계를 연결하는 열쇠라고 믿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책과 실험, 별과 영적 존재,
민간 신앙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주의 질서를 탐구했고, 자연 마법(natural magic)은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과학적 태도와 맞닿아 있었다.
이처럼 과학과 마법, 신비주의는 뚜렷이 분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며
새로운 지식과 세계관을 형성했다.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마법과 신비주의에 대한 의심과 박해가 커졌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신비적 체험과 영적 변형을 추구했다.
일부 신비주의자들은 교회와 사회의 의심 속에서도 자신만의 영적 해석과 실천을 발전시켰고,
이는 당시 과학과 종교, 예술, 문학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영국의 지적 풍토는 근대 과학의 태동과 더불어, 마법적·신비주의적 세계관이 살아 숨 쉬던 복합적 전환기의 한 단면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존 디는 지식인으로서
심각한 존재론적 위기를 경험했다.
미술사학자 프랜시스 예이츠(Frances Yates)의 연구에 따르면, 디는 중세적 세계관의 붕괴와 르네상스적 세계관의 미완성 사이에서 새로운 존재 이해를 구축하려 했다 [^37].
- 중세적 세계관은 붕괴하고 있었고,
- 근대 과학과 제국주의는 아직 미완성 단계였다.
세계는 열려 있었지만,
그만큼 혼란스럽고 무질서했다.
존 디는 이 불안정한 세계를
지식 충동으로 붙잡으려 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육받았으며,
50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다.
과학사학자 데보라 하크니스(Deborah Harkness)의 분석에 따르면, 디는 당대 영국 최고의 수학자이자
지리학자였으며, 천문학과 점성술, 연금술에도 정통했다 [^38].
그의 개인 도서관은 4,000권 이상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보다 더 큰 규모였다.
존 디의 '지식 충동'은 당시 르네상스 사상의 핵심인 '헤르메티시즘(Hermeticism)'과 연결되어 있었다.
헤르메티시즘은 고대 이집트 지혜의 부활을 통해 세계의 신비를 해독하려는 사상적 흐름이었다 [^39].
디는 이 사상을 통해 우주의 숨겨진 패턴을 파악하고, 그것을 정치와 제국 구상에 적용하려 했다.
* 헤르메티시즘 (Hermeticism)
헤르메티시즘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한 고대 이집트-그리스 철학적 전통으로, 신성한 지혜를 추구하는 비의(祕義)적 사상 체계로, 고대 이집트의 신 토트와 그리스 신 헤르메스의 이름을 결합한 신화적 인물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의 가르침에 기초한 철학적·종교적 전통이다.
이 사상은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신플라톤주의와 결합하며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다시 부흥했다.
헤르메티시즘은 우주와 인간, 신의 본질을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이해하며,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As above, so below)”라는 원리로 우주와 인간 사이의 상응 관계를 탐구한다(인간(소우주)과 우주(대우주)는 서로 반영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
헤르메티시즘은 연금술, 점성술, 자연 마법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며, 이 세계를 신성한 지혜가 담긴 암호화된 책으로 간주한다.
존 디는 이 사상을 통해 우주의 숨겨진 질서를 해독하고, 그것을 정치적 구상으로 변환하려 했다.
그는 수학, 천문학, 점성술, 연금술, 신비주의를 통섭하며 세계의 숨은 질서를 해독하고자 했다.
존 디에게 초월 충동은
존재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해독하고, 다시 설계하는 것이었다.
1581년경,
존 디는 신비적 의식을 통해
'에노키안(Enochian)'이라 불리는
천사 언어를 복원했다고 주장했다.
디는 그의 조수 에드워드 켈리(Edward Kelley)와 함께 천사들과 교신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의 교신 기록은 『참된 충실한 관계(A True and Faithful Relation)』라는 책으로 남아있다 [^40].
이 기록에 따르면, 천사들은 디에게 세계의 근본 구조와 인류 역사의 신성한 계획을 계시했다.
에노키안 언어에는 복잡한 문법과 알파벳이 있었으며, 디는 이를 통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사용했던 원초적 언어에 접근했다고 믿었다.
현대 언어학자들은 에노키안이 디나 켈리의 창작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그 구조적 복잡성은
여전히 놀라운 것으로 평가된다 [^41].
에노키안은 세계 창조의 언어,
존재의 패턴을 다시 여는 열쇠였다.
존 디는 천사들과 교신하며,
존재의 심연을 해독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설계하려 했다.
* 에노키안 언어 (Enochian)
에노키안 언어는 존 디와 에드워드 켈리가 천사와의 교신을 통해 받았다고 주장한 “천사의 언어”다. 이들은 1582년 영적 실험을 통해 에노키안 문자와 문법, 주문 등을 전수받았으며, 이를 창세기 인물 에녹(Enoch)이 사용한 언어의 재발견으로 간주했다.
존 디는 에노키안을 신이 우주 창조 시 사용한 원초적 언어이며,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된 후 잃어버린 “엔젤리컬(Angelical)”의 변형이라고 주장한다.
에노키안 언어는 19개의 기도문과 48개의 천사적 호출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 학자들은 그 구조적 복잡성에 주목하고 있다.
디는 이 언어를 통해 세계 창조의 신비와 우주적 질서의 원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영국의 제국적 비전을 정당화했다.
“Zir”(신), “Gah”(땅), “Mabza”(파괴) 등 천지창조와 오컬트 실천을 반영하는 단어가 많고,
학술적 논란 속에서도 오컬트 문화와 현대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정치 외교에도 적극 개입했다.
디는 단순한 은둔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신임을 얻어
국제 정치에 깊이 관여했다.
디는 스페인,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등 유럽 강대국 사이에서 영국의 위치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외교적 조언을 제공했다 [^42].
1583년,
디는 켈리와 함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정을 방문했다. 루돌프는 당대 최고의 신비주의 애호가로, 연금술사와 점성술사들을 적극 후원했다.
디는 루돌프에게 천사 계시와 세계의 신성한 질서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설명했으나, 루돌프는 디의 비전보다 켈리의 연금술에 더 관심을 보였다 [^43].
이후 디와 켈리 사이에는 갈등이 생겼다.
켈리는 천사들이 두 사람에게 아내를 공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고, 이는 디에게 심각한 도덕적 위기를 가져왔다. 결국 두 사람은 결별했고,
디는 1589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44].
영국으로 돌아온 디는 자신의 도서관이 약탈당하고,
평판이 손상된 것을 발견했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고, 그는 남은 생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보냈다.
그의 초월 충동은 빛과 어둠,
순수성과 야망 사이를 끊임없이 진동했다.
존 디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브리튼 제국(British Empire)"이라는 구상을 제시했다.
역사학자 겐츠(Gents)의 연구에 따르면,
디는 "제국(Empire)"이라는 단어를 현대적 의미로 처음 사용한 영국인이었다 [^45].
그는 1577년 『일반적이고 희귀한 기념물들(General and Rare Memorials)』을 출간하여 영국의 해양 제국 구상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디의 제국 구상은 지리적 확장만이 아니라,
초월적 사명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는 영국이 고대 트로이의 후예이자 아서왕의 정당한 계승자로서, 유럽과 신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신성한 사명이 있다고 주장했다 [^46].
이는 단순한 정치적 구상이 아니라, 역사와 신화,
예언과 지리를 결합한 총체적 비전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존 디의 초월적 비전을 적극 수용했다.
디는 엘리자베스의 호로스코프를 작성하고,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중요한 결정의 시기를 점성술적으로 조언했다. 그는 또한 궁정의 의례와 상징체계에 깊이 관여했다 [^47]. 엘리자베스는 디의 조언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정책을 시행했다:
구체적인 실행:
- 1577년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세계 일주 지원
- 사략 해적 활동(스페인 금은선 공격) 허가
- 해군력 증강, 신대륙 전초기지 설치
-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1588)
* 호로스코프(horoscope)
호로스코프는 점성술에서 한 사람의 출생 순간이나 특정한 시간에 태양, 달, 행성 등 천체들이 하늘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를 도표로 그린 것이다.
이 도표는 흔히 ‘천궁도’ 또는 ‘점성술 차트’라고도 불리며, 그리스어로 ‘시간의 모습’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호로스코프는 12개의 별자리(황도 12궁)와 12개의 하우스(인생의 다양한 영역을 상징하는 구획)로 나뉘며, 각 하우스에 위치한 행성들과 별자리의 조합을 통해 개인의 성격, 운명, 인생의 주요 사건 등을 해석한다.
점성가는 이 차트를 바탕으로 개인의 삶의 경향, 잠재력, 미래의 가능성 등을 예측하거나 조언을 제공한다.
특히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해전은
디가 제안한 해양 제국 전략의 결정적 승리였다.
역사학자 맥그레일(McGrail)에 따르면,
디는 이 시기 영국 해군력 강화를 위한 항해술,
지도 제작, 선박 설계 등에 직접 기여했다 [^48].
그는 또한 미지의 영토에 대한 영국의 주권을 정당화하는 실체적, 역사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엘리자베스는 디의 구상에 따라
영국을 해양 제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엘리자베스는 단순히 제국적 확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신화적 존재로 재구성했다.
미술사학자 로이 스트롱(Roy Strong)의 연구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이미지를 신화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정교한 선전 시스템을 구축했다 [^49].
이 과정에서 디의 신비주의적 세계관과 우주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에아(Astraea)의 이미지 수용
- 순수성, 초월적 정의, 황금시대의 복귀 상징
아스트라에아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마지막으로 인간 세계를 떠난 여신으로, 황금시대의 귀환을 알리는 존재였다. 디는 엘리자베스가 바로 이 아스트라에아의 현신이며, 그녀의 통치는 새로운 황금시대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50].
* 아스트라에아 신화 (Astraea Myth)
아스트라에아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으로, 인간 세계의 타락을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지상을 떠난 올림푸스 신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이 신화는 황금시대의 귀환과 연결되었다.
존 디와 엘리자베스 시대 지식인들은 여왕을 아스트라에아의 현신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녀의 통치를 신화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처녀 여왕'으로서 엘리자베스의 순결은 아스트라에아의 신성함과 결합되었고, 이는 영국의 제국적 팽창과 문화적 르네상스를 정당화하는
상징적 틀이 되었다.
스펜서의 서사시 『페어리 퀸(The Faerie Queene)』, 말로우의 희곡,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등 당대 문학작품들은 이 신화적 이미지를 반영했다.
예술가들은 엘리자베스를 달의 여신 다이애나,
순결의 여신 베스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 등 다양한 신화적 인물로 묘사했다 [^51].
공식 문서, 연극, 문학, 미술에서
엘리자베스는 "인간 군주"를 넘어
"신화적 질서의 화신"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이 전략은 디가 제공한 초월 충동 구조에 기반했다:
- 존재의 혼돈을 넘어
-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겠다는 비전
이는 미르체아 엘리아데가 말한
'우주적 중심(Cosmic Center)'의 개념과 연결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우주적 질서의 중심으로 위치시킴으로써, 정치적 권위를 초월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52].
* 우주적 중심(Cosmic Center)
미르체아 엘리아데가 말한 ‘우주적 중심(Cosmic Center)’은 인간이 성스러운 공간을 경험하고, 세계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 장소 또는 축을 의미한다.
이 중심은 하늘과 땅, 지하 등 서로 다른 차원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신성한 나무, 산, 기둥, 사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인간이 우주와 소통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 근본적 지점이 된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전통 사회에서는 집, 도시, 사원 등 중요한 공간을 우주적 중심의 상징에 따라 설계하고, 이를 통해 혼돈 속에 질서를 세우며 자신들의 세계를 성화한다.
우주적 중심은 단순한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인간이 신성함을 경험하고 영적 귀속감을 얻는 신화적 원형으로 작용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신성한 질서와 연결하기 위해, 초상화와 공적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우주적 중심에 위치시키는 상징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대표적으로 1588년 무적함대 격파 이후 그려진 ‘아르마다 초상화’에서 엘리자베스는 지구본 위에 손을 얹고, 배경에는 영국 함대가 스페인 함대를 물리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그녀가 영국과 세계의 중심에 서 있으며,
국가의 번영과 질서, 해상 패권의 상징적 축임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는 초월 충동을
개인적 구원이나 신비적 체험에 머물지 않고,
국가 통치, 제국 전략, 신화적 권력 구조로 변환했다.
존 디 자신은
최종적으로 몰락했다.
엘리자베스 시대 말기, 디는 점차 궁정에서 밀려났다.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의 부상과 함께 그의 통합적
세계관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디가 사망하기 3년 전인 1606년, 의회는 마법 금지법을 강화했고, 이는 디의 신비주의적 실험들을 위험한 것으로 규정했다 [^53].
- 그의 연구는 이단으로 의심받았고,
- 궁정에서 밀려나 빈곤 속에 생을 마쳤다.
디는 1609년, 모틴 지역의 작은 집에서 가난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방대한 도서관은 분산되었고,
많은 저술들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그의 초월 충동은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이라는 형태로 살아남았다.
존재를 넘어서는 대신,
존재를 해독하고 다시 설계하려 했던
야망적 초월 충동은
한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한 제국의 신화를 구축했다.
존 디는 초월 충동이 개인의 운명을 넘어 역사적 변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사라졌지만,
그가 심은 초월적 구상의 씨앗은 영국 제국의
자기 이해와 세계 인식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디는 '인식소(episteme)'의 전환기에 살았던 인물이었다 [^54].
그는 마법적-신비적 세계관과 합리적-과학적 세계관 사이의 균열 지점에 서 있었으며,
그 균열을 통해 새로운 권력-지식 체계를 구상했다.
그의 실패는 개인적 비극이었지만,
그의 비전은 영국 제국주의의 지적 기반이 되었다.
* 미셸 푸코의 ‘인식소(episteme)’
미셸 푸코의 ‘인식소(episteme)’는 특정 시대의 지식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무의식적 규칙 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한 시대의 학문·담론·실천을 조직하는 보이지 않는 틀이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인식소는 ‘유사성’(예: 별자리와 인간 운명의 대응)을 중심으로 지식을 연결했고,
고전주의는 ‘분류와 재현’(예: 동식물 표본화)을 통해 세계를 체계화했다.
근대 인식소는 ‘역사성’(진화, 경제적 결정론)과 ‘인간’을 분석의 중심에 놓으며
생물학·정치경제학 등을 탄생시켰다.
인식소는 시대마다 다른 진리 체계를 생성하며, 권력과 결합해 무엇을 ‘앎’으로 인정할지 결정한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탈인간중심주의는 근대 인식소의 핵심인 인간 중심성과 역사적 진보 서사를 해체하는 양상을 보인다.
빅데이터와 AI는 인간의 해석을 넘어 알고리즘적 예측을 새로운 진리로 만들고, 생태학·사이보그 이론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흐린다.
이는 푸코가 예견한 ‘인간의 소멸’과 맞닿아 있으며, 근대 인식소를 대체할 새로운 지식의 구조가 태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존 디는 존재 불안을
해독과 설계의 초월 충동으로 승화시켰고,
엘리자베스 1세는
이 초월 충동을 받아들여 제국을 확장하고,
자신을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에아로 신화화함으로써
세계 위에 새로운 초월적 질서를 새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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