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먹고사는 법, 김치와 함께
미국에서 살며 가장 한국이 그리워지는 순간은, 입안이 칼칼해질 때다. 밥상 위에 김치가 없으면 허전하고, 고추장 없이 비빔밥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먹고사는 일’이 단순한 생존이 아닌 문화의 지속이다. 내가 사는 세인트루이스 같은 중서부 도시에도 다행히 ‘동양장’이라 불리는 한국·아시아 식품점이 있다.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지만, 한인들은 이곳을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른다. “동양장 간다”는 말에는 단순한 쇼핑 이상의 정서가 담겨 있다.
동양장은 보통 멀다. 집에서 30분, 길게는 한 시간 이상 운전해야 도착한다. 하지만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2주 혹은 3주에 한 번씩 장을 본다. 목적은 단 하나—한국의 맛. 쌀, 고추장, 된장, 두부, 김치, 라면, 어묵, 그리고 계란 말이용 햄까지. 쇼핑 카트는 금세 가득 찬다. 금액도 150불에서 200불쯤 된다. 그렇게 차에 한가득 싣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뿌듯하다. 냉장고와 팬트리에 물건을 정리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이제 몇 주는 걱정 없이 먹고 살겠구나.’
이민 생활에서 한국어로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동양장은 그런 의미에서 ‘작은 한국’이다. 주인도 한국 분이고, 직원들도 대부분 한국말을 한다. 간단한 안부 인사에서부터, 고춧가루 브랜드 추천까지 대화가 이어진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가 외로운 이민자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가끔씩 시카고나 댈러스 같은 대도시에 갈 일이 생기면, 동양장 방문은 필수 일정이다. 대형마트 규모의 한인 마켓에서는 한국 제품이 넘쳐나고, 김밥이나 순대, 떡볶이까지 파는 푸드코트도 있다. 그럴 땐 트렁크를 두 배로 채운다. 어쩌면 그 물건들보다 더 중요한 건, 잠시라도 한국 안에 들어갔다 온 듯한 그 기분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김치냉장고 없는 삶에서 김치를 끊임없이 찾아 나서는 일과 비슷하다. 익숙한 맛을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다시 돌아와 식탁 위에 올린다. 먹는 것은 사는 것이다. 고국의 맛은 낯선 땅에서의 생존 기술이자 정체성의 뿌리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먼 길을 달려 동양장에 간다. 그리고 그렇게, 미국에서 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