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계약 동거에 대한 인식

노년의 새로운 관계 방식

by 라온재

노년의 동거, 낯설지만 필요한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 노년의 ‘계약 동거’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동거라는 단어만 들어도 “혼전 동거”나 “불륜”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문화 속에서, 노년의 남녀가 ‘계약’을 바탕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도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동반자 관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재혼은 부담스럽고, 혼자는 외롭다’는 현실 속에서, 계약 동거는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왜 재혼이 아닌가?


노년의 재혼은 생각보다 많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자녀들과의 관계, 재산 문제, 건강 악화에 따른 돌봄 부담 등 수많은 변수들이 얽혀 있다. 특히 한국은 여전히 ‘혼인 관계’에 많은 책임과 의무를 기대하는 사회다. 누군가와 법적으로 묶이는 일은, 노년기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엔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되, 법적으로는 독립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계약 동거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서로의 삶에 일정한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 관계. 경제적 분리, 상속 문제의 명확화, 그리고 돌봄의 의무를 계약서로 조율함으로써, 노년의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는 시도다.


계약 동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특히 한국 사회는 노년의 연애나 동거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외로워서 저러는 거지’라는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중년 이후 여성이 동거를 택하면 ‘경제적으로 의존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남성이 동거를 택하면 ‘말년에 외로움을 못 이겨 불장난하냐’는 비난을 받는다. 노년의 사랑과 우정, 동반자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서사가 부족한 탓이다.


심지어 가족들도 동거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 나이에 뭘 다시 만나?”, “엄마 아빠 재산은 지켜야지”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결국 많은 이들이 현실적인 필요를 느끼면서도, 가족과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계약 동거를 ‘비밀스럽게’ 선택하거나, 아예 포기한다.


계약 동거, 새로운 가능성인가? 일시적 유행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 동거는 분명 노년의 삶을 유연하게 만드는 하나의 ‘새로운 틀’이 될 수 있다. 핵심은, 그 관계가 ‘필요’에서 출발하되 ‘존중’과 ‘합의’를 기반으로 할 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 계약을 통해 관계를 점검하고, 서로의 경계와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삶을 보다 인간답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방식.


아직은 일부의 시도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이 형태가 점점 늘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회가 고령화되고, 100세 시대에 홀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혼자 살 수는 없고 다시 결혼하고 싶지는 않은 이들을 위한 ‘회색 지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한국 사회에서 노년의 계약 동거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방식은 언제나 낯섦으로부터 시작된다. 조금은 이상하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면 사회는 결국 변화를 받아들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와 인식의 변화다. 계약 동거가 ‘정서적 탈출구’가 아닌, ‘합리적 선택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와 문화적 표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 노년의 사랑과 동반자 관계가 자연스럽게 다뤄지고,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언젠가 계약 동거도 당당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누군가와 마지막 계절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법이든 제도든, 가족이든 사회든, 그 소중한 감정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계약 동거는 그 감정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제는 그 가능성에 조금 더 따뜻한 눈길을 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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