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의 고수, 햇살과 바람 사이에서
12월, 뜻밖의 한 달 휴가가 생겼다. 독일 근무 시작을 앞두고 연방정부 셧다운 여파로 인한 행정처리 때문에 일정이 연기되면서,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주저하지 않고 항공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카리브해로 향했다. 도착한 순간, 27도, 28도의 따뜻한 공기와 햇살이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소금기 섞인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수영장 옆 라운지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기도 하고, 그저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처음 크루즈 여행을 떠날 때의 설렘은 이제 익숙함으로 변했다. 초반에는 이것저것 계획하고, 투어와 액티비티를 체크하며 바쁘게 움직였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아침 햇살과 함께 조식 뷔페에 앉아 신선한 과일과 커피를 음미하고, 낮에는 수영장 물에 몸을 맡기며 가볍게 떠다닌다. 간간이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듣고 눈을 감으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스며든다.
오늘 도미니카 공화국의 작은 섬에 도착했지만, 발걸음을 내리지 않았다. 화려한 관광이나 액티비티보다, 그늘진 수영장 라운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간접적으로 섬을 즐기는 편이 훨씬 편안했다. 햇살이 물에 반짝이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는 순간, 시간의 속도는 느려지고, 마음은 고요해진다. 그때 느낀 멍하니 있음이라는 사소하지만 진짜 휴식의 의미는, 앞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스스로 크루즈 여행의 고수가 되었다. 일정표를 확인하거나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먹고, 자고, 수영하고, 다시 먹고 자는 단순한 반복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쉬고, 심지어 반복되는 심심함조차 즐거움으로 변했다. 첫 주와 다음 주는 크루즈 생활을 온전히 즐기고, 한 주 쉬며 다시 멕시코 항로에 올라 여행을 이어간다.
1월 12일,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첫 근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이 한 달은 나만의 시간이었다. 여행이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무엇도 하지 않고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는가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햇살, 바람, 물,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의 멍함. 크루즈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바로 여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 속에서 나를 만나는 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