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대부분이 출근 준비로 분주한 이른 아침, 나는 매일 6시 45분이면 어김없이 ‘라이프타임’ 헬스클럽의 문을 연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곳은 은퇴를 준비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출근지’다.
락커룸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손에 물병과 수건을 들고 짐 안으로 들어서면 풍경은 어제와 다르지 않다. 쿵쾅대는 음악, 윙윙 돌아가는 러닝머신, 땀냄새와 섞인 샴푸향, 가볍게 웃는 젊은 트레이너의 인사. 그 안에서 나는 늘 내 자리를 지킨다.
정중앙. 바닥엔 요가 매트를 두 장 겹쳐 깔고, 그 위에 커다란 수건을 넓게 펼친다. 나만의 운동 터전이다. 6개월째 같은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왔으니 이제 이곳은 내 ‘고정석’이라 해도 무방하다.
운동의 시작은 늘 15분간의 관절 돌리기. 손목, 발목, 손가락, 무릎, 목, 어깨… 돌아갈 수 있는 관절은 다 돌린다. ROM, 즉 관절 가동범위 유지에는 이만한 루틴이 없다. 나름 유튜브도 보고 공부한 결과다.
그런데 이 준비운동 시간에, 나만의 ‘시선 훈련’도 함께 이뤄진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는 러닝머신이 일렬로 놓여 있고, 그 위엔 룰루레몬 타이즈를 입은 여성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열 명의 엉덩이. 하나같이 다른 형태, 다른 움직임. 어떤 이는 엉덩이를 단단히 조이고 달리며, 어떤 이는 달릴 때마다 엉덩이가 리듬을 탄다. 상체를 고정한 채 다리로만 달리는 이도 있고, 약간은 좌우로 흔들리는 사람도 있다. 어쩌다 이런 자리를 얻게 된 건지, 이곳이 아니면 보기 힘든 엉덩이의 향연이 매일 펼쳐진다.
나는 원래 이런 걸 잘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 아내와 함께 살던 시절에도 그녀의 엉덩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본 기억은 없다. 룰루레몬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예쁜 사람이 룰루레몬을 입는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아름답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10분 뒤꿈치 들기 운동이 시작되면, 러닝머신 위의 그룹은 교체된다. 새로운 팀이 등장하며 또 다른 엉덩이들이 내 앞에 줄지어 선다. 드물게 남성 엉덩이도 두세 명 섞이는데, 뭐 어쩌겠는가. 감상에는 늘 작은 노이즈가 따르는 법이다.
나는 무념무상의 자세로 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10분을 보낸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르고, 엉덩이들이 그 위로 춤을 춘다. 어떤 날은 룰루레몬의 봉제선이 이렇게도 예술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감탄하게 되고, 또 어떤 날은 팬티 자국이 전혀 보이지 않는 타이트함에 당황하기도 한다. T팬티일까, 아니면 노팬티? 아, 인생의 수수께끼는 끝이 없다.
스쿼트 시간이 되면 정면을 향해 쳐든 엉덩이들과 마주하게 된다. 한 손에 아령을 들고 좌우로 이동하며 스쿼트를 반복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마치 현대무용 같고, 마주 선 나는 약간은 부끄러운 구경꾼이다. 나는 일부러 보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자리가 그렇게 생겼을 뿐이다.
푸시업은 나에게 여전히 힘든 운동이다. 시선은 아래로 둬야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옆으로 누운 여성이 한쪽 다리를 들어올리는 동작이라도 하는 날엔… 나의 시선도, 집중력도 함께 위로 들린다. 그렇게 푸시업 100개를 나눠서 하고 나면 숨이 차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이어지는 코어 운동, 고관절 운동, 다리 들기와 스쿼시 동작이 이어지고, 음악은 점차 잦아든다. 주변은 여전히 소란하지만, 나는 결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시작한다. 처음엔 다리가 저려 죽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30분쯤은 거뜬하다. 눈을 감으면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음악은 바람 같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흘러가는 물결 같다.
명상이 끝나면 다리를 천천히 풀고, 발목을 돌린다. 어느새 또 새로운 팀이 러닝머신에 올라 운동을 시작했다. 내 앞엔 또다시 신선한 엉덩이들이 리듬을 타고 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내일도 이 자리에 와야지.”
마지막은 철봉이다. 데드행 1분 20초. 손끝이 저리고 팔이 떨리지만, 이 순간만큼은 전신이 하나가 된다. 자리를 털고 사우나로 향하면 온몸의 피로가 증기로 흩어진다. 헬스장을 나설 때면 언제나 기분이 상쾌하다.
마치 스무 살로 돌아간 듯한 기분.
회춘한 것 같은 이 느낌, 과연 운동 때문일까? 아니면… 그 엉덩이들 때문일까?
내일도 다시, 회춘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