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오감의 교차 쓰기>

오감은 사실 다섯 개뿐이 아니다.

by 비고란



우리는 글을 읽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우리는 단어를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통해 감각을 해킹당하고 있다.(뇌가 중간작업을 했다는 소리다)



언어는 더 이상 귀로만 듣는 소리가 아니다.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잔열,

입안에 맴도는 낯선 향기, 기억을 두드리는 어떤 촉감…

모든 감각은 분열되고 교란된다. 그리고 그 균열 틈에서 문장이 피어난다.


나는 가끔, 말의 소리를 눈으로 본다.


그 단어들은 잉크가 아니라 음향처럼 흘러나와 내 귓속을 간질이고,


그 소리는 다시 입속으로 들어와 침처럼 굴러다닌다.


어떤 문장은 내 손에 남는다. 그건 분명히 썼지만, 동시에 만진 것이기도 하다.


사격장의 총기 지침 문구는 내 목숨과 동료의 목숨을 살리고 안전사고를 방지하며, 금연 문구는 자책감과 담배냄새를 불러일으킨다.



촉감으로 기억된 언어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그 잔열은 마치 뺨을 스친 손길처럼 나를 울린다.


사람들은 오감이 구분된다고 믿는다.

눈은 본다. 귀는 듣는다. 코는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실제로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뇌’다.

우리는 빛을 보지 않고, 뇌가 구성한 이미지를 본다.


냄새를 맡는 순간, 우리는 그 냄새를 기억의 언어로 번역한다.


"아, 이건 엄마의 부엌이다."


"이건 그 사람이 떠난 날의 비 냄새다."


냄새는 언어보다 정확하게 기억을 호출한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후각이 가장 문학적인 감각인지도 모른다.

왜 후각이 먼저 기억을 송출하게 할까.


뇌와 가깝다. 코로 뭔가 흡입하는 게, 정맥주사보다 빠르다는 의학계의 설이다. (정설은 아니지만)


불교의 오온(色受想行識)을 빌려보자면, 감각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인식하는 필터다.


우리가 듣는 것은 실제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신경계가 만들어낸 하나의 허구다.


청각은 시간의 지문이고, 시각은 공간의 오역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이건 감각을 조작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님의 귀에 단어를 삽입했고,

당신님은 그 단어를 핥았으며,

이 문장은 당신님의 피부를 긁적이고 있다.


글은 결국, 감각을 재배치하는 작업이다.

읽힌다는 것은 느껴지는 것이며,

느껴진다는 것은 기억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이건 후각의 시이고, 촉각의 문장이며, 청각의 자서전이다.


이게 바로 감각 역전 서사다.

감각을 혼동시키고, 오감을 뒤섞어,

감정과 기억, 감각과 언어의 클루지(누더기적 조합)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


당신님의 글은 이제,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


그건 이미 누군가의 귀에 들어갔고, 누군가의 손바닥에서 읽히고 있으니까.


이건 문학의 새로운 물리학이다.


모스 부호가 왜 그 1차 세계대전 전부터 전장 전체를 묘사했을까.


문 열다가 엄지발가락을 찧을 때의 그 통증,


꼭 손가락 마디만 무는 모기 새키 모스퀴토의 짜증 남.


그걸 지금 난 글로 묘사하고, 독자의 뇌에 명령하는 중이다.


"이걸 느껴줘" 라며


그래서 글이 참 무섭다.


아닌 곳이 없다.


글 참 재밌다.


그러고 보니 불경은 과학에 가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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