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주요 작품으로 추론 기법 배우기(1)

Sherlockian Way of Thinking

by 박승룡

이번 장에서는 홈즈가 어떤 추론 기법을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해 사건을 해결하는지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 《바스커빌 가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The Five Orange Pips) 》 등 4편의 대표적 작품을 통해 살펴보자.

작품은 ▴논리적 추론법을 보여주는 장면이 뚜렷한가 ▴이야기 전개가 긴장감 있고 흥미로운가 ▴문학사적으로 독창성, 영향력, 완성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가를 기준으로 선정했다.


1. 《주홍색 연구 (A Study in Scarlet, 1887)》

《주홍색 연구》는 단순한 셜록 홈스 추리소설의 출발점이 아니다. 서사와 구조 면에서도 참신한 실험을 감행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1, 2부로 나뉜 구성은 범죄 사건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로, 이후 수많은 추리소설에 영향을 주었다.

이 작품의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단순히 ‘범인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파고드는 서사 중심의 추리 기법이다. 독자는 홈즈의 추론만큼이나, 범인의 인생 서사와 그가 저지른 범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따라가며 한 편의 드라마를 목격하게 된다.

이 작품은 또 셜록 홈스 시리즈 중에서도 드물게 강한 사회 비판적 색채를 드러낸다. 종교 공동체의 억압적인 권위 체계, 여성의 자유 의지에 대한 침해, 신앙과 권력의 결합이 만들어낸 폐쇄적 세계는 단지 배경 설정을 넘어서, 폭력과 복수의 원인을 제공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이처럼 《주홍색 연구》는 셜록 홈스라는 상징적 캐릭터의 탄생뿐 아니라, 추리소설이 서사적 깊이를 확보하고 문학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이다.


인생의 서(The Book of Life)

《주홍색 연구》의 첫 부분에는 홈즈가 자신이 쓴 ‘인생의 서’라는 논문을 놓고 왓슨 박사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홈즈는 자신이 활용하는 논리적 추론방식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보여준다.

홈즈는 논문에서 사람의 외모, 손의 상태, 옷차림, 자세, 걸음걸이와 같은 작은 단서들을 갖고 그 사람의 직업, 습관, 출신지 등 삶의 여러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겉모습과 행동이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정보를 담고 있으며, 날카로운 관찰력과 논리적 사고를 결합하면 그 책을 읽듯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왓슨은 회의적이다. 이론은 흥미롭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정확히 사람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자 홈즈는 직접 그 능력을 시연한다. 홈즈는 왓슨에게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셨군요’라고 말하자 놀라지 않았느냐”며 침착하게 추론 과정을 설명한다.

먼저 몇 가지 일반적인 사실이나 원리를 전제로 삼는다. 예를 들어,
• “곧은 자세와 태도는 군 경험의 흔적이다”
• “햇볕에 탄 피부와 지친 기색은 뜨겁고 거친 기후에서 활동한 흔적이다”
• “조심스러운 팔 움직임은 전투 중 부상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런 일반 법칙들을 왓슨의 자세, 말투, 피부색, 팔의 움직임 등 관찰로 알아낸 구체적 사실에 적용함으로써 ‘왓슨은 군의관 출신이고, 최근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림이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일반 원칙에서 특정 결론을 도출하는 ‘연역법’을 활용한 것이다.

이어 홈즈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그는 군의관이었고, 뜨거운 지역에서 복무하다 최근 귀국했으며, 부상을 입었다.”
이 가설이 맞다고 하면 어떤 사실이 관찰되어야 할까?
• 군의 태도, 의사의 말투, 햇볕에 탄 피부, 지친 얼굴, 팔 부상의 징후…

실제 왓슨에게서는 이런 모든 특징이 관찰된다. 이제 홈즈는 그 가설을 받아들인 다음 확신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온 군의관”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 장면은 홈즈의 추리가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관찰 → 일반 법칙의 적용 → 가설 설정 → 결과 예측 → 현실 확인이라는 고도의 지적 사고 과정임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이 단순한 탐정 소설이 아니라 사고의 훈련이자 논리적 사고의 모범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사건 개요


의문의 살인

1881년, 런던의 한 빈집에서 한 남성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채 발견된다. 피해자는 미국 출신의 이노크 J. 드리버(Enoch J. Drebber). 시신은 브릭스톤 로드(Brixton Road)에 있는 버려진 집에서 발견된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린 듯 일그러져 있으며, 현장에는 격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의 몸에는 어떠한 외상도 없었고,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가장 수상한 단서는 벽에 피로 쓰인 "RACHE"라는 단어다. 처음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RACHE"가 여성의 이름 "Rachel(레이철)"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셜록 홈스는 즉시 그것이 독일어로 "복수(Revenge)"를 의미한다고 판단한다.

더불어, 시신 가까이에는 여자의 결혼반지가 떨어져 있었으며,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호텔에서는 동료인 조셉 스탠거슨(Joseph Stangerson)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또 다른 희생자

경찰은 첫 번째 살인의 주요 용의자로 드리버의 동료인 스탠거슨을 의심하고 그의 행방을 추적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역시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스탠거슨은 칼에 찔려 살해되었으며, 그의 방에서는 작은 약병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것이 독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셜록 홈스는 이전 사건과 연결된 정황을 바탕으로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비극

홈즈의 추적 끝에 사건의 진실은 30년 전, 미국 유타(Utah)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리버와 스탠거슨은 모르몬(Mormon) 교도들과 함께 유타에 정착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한 소녀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었다.

과거, 한 남자 존 페리어(John Ferrier)와 그의 양녀 루시 페리어(Lucy Ferrier)는 모르몬 교단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지만, 모르몬 지도자들의 강요로 인해 루시는 교단 내 두 주요 인물 중 한 명과 결혼해야 했다. 결국 루시는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후 슬픔과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 제퍼슨 호프(Jefferson Hope)는 이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오랜 시간 동안 드리버와 스탠거슨을 추적한 끝에 런던에서 마침내 그들을 찾아냈다.


복수의 완성

호프는 런던에서 마부로 위장하며 드리버를 미행한 끝에 그를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드리버에게 두 개의 알약을 제시하고 선택하게 했는데, 하나는 독이 들어 있고 다른 하나는 무해한 것이었다. 결국 드리버가 독이 든 알약을 선택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스탠거슨도 살해당했으며, 이는 호프가 계획했던 복수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호프는 자신의 신병이 악화되는 바람에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고, 결국 홈즈와 경찰에게 붙잡히고 만다. 체포된 후 그는 자신의 동기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았으며, 감옥에서 자연사하면서 그의 복수는 끝을 맺는다.

'마그네틱 프레스에서 제작하고 빈센트 말 리가 그림을 그린 하드커버 그래픽 노블 셜록 홈스의 첫 모험 주홍색 연구 커버.

사건과 범인의 특징 파악


홈즈는 살인 현장을 둘러본 직후, 그렉슨과 레스트레이드 형사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준다:

“범인은 키가 1미터 80센티미터 이상이고, 인도산 시가 트리치노폴리를 피웠으며, 오른손의 손가락 중 특히 손톱이 긴 사람으로, 어젯밤 피살자와 함께 사륜마차를 타고 이곳에 왔습니다.”

이 말은 당시에는 마치 ‘마법처럼’ 들렸지만, 이후 홈즈는 이 모든 것이 관찰과 논리적 추론의 결과였다고 왓슨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홈즈가 어떤 논리적 추론 과정을 거쳐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아보자.


범인은 사건 당일 밤 피살자와 함께 사륜마차를 타고 왔다

사건 다음날 현장에 도착한 홈즈는 ‘관찰’과 ‘조사’를 통해 인도 가까이에 붙어 있는 두 줄의 깊게 파인 마차 바퀴 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이 자국은 어젯밤 범인이 남긴 것은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제 실제 관찰한 사실을 가지고 가설을 검증할 단계다. 홈즈는 사건 당일 밤 런던에 일주일 만에 비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에 바퀴 자국이 ‘깊이’ 파여 있다는 사실을 더해 문제의 마차가 집 앞을 지나간 시점은 ‘사건 당일 밤’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어 “그다음에 그곳에 마차를 타고 온 사람이 없다”는 그랙슨의 발언과 바퀴 자국이 인도 가까이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마차를 타고 온 두 사람이 집으로 들어갔다’는 부분도 확인한다.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로부터의 예측이 관찰한 사실과 일치하는지를 검증하는 가설-연역법을 활용한 것이다.


범인의 키는 180cm 이상이다

홈즈는 현장 바닥에서 창문까지 뻗은 발자국의 간격과 바닥에 남겨진 발자국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고 긴 보폭을 가진 사람이 걷거나 뛰었음을 파악한다. 그리고 ‘키가 클수록 보폭이 넓다’라는 일반 법칙을 파악한 사실에 적용하는 연역법으로 법인이 큰 키를 가졌을 것이라 가정한다.

또 범인이 남긴 글씨가 바닥에서 1미터 80센티 정도 되는 곳에 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사람이 벽에 글씨를 쓸 때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눈높이에 쓴다”라는 일반 법칙을 적용하는 연역적 추론으로 ‘범인의 키가 1미터 80센티 이상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범인은 오른손 손톱이 유난히 길다

홈즈는 벽의 글씨(RACHE)를 보고 “범인이 손가락에 피를 묻혀서 쓴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어 확대경으로 글씨의 굵기, 방향 등과 글씨 아래의 회벽을 관찰한 뒤 검지로 글씨를 썼고, 회벽이 약간 긁힌 자국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 사실은 “가설이 맞다면, 글씨에는 손가락 모양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과 예측과 정확히 일치한다.” 전형적인 가설-연역법의 적용이다. 홈즈는 또 회벽의 약간 긁힌 자국을 보고, 범인의 손톱이 평범한 사람보다 더 길다는 사실을 유추해 낸다. 현상을 가장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원인을 추정하는 가추법을 이용한 것이다.


범인은 트리치노폴리 시가를 피운다

현장에는 특별한 담뱃재가 떨어져 있었다. 홈즈는 수년 동안 다양한 종류의 담배와 시가의 재 모양을 연구해 둔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재가 인도산 시가 ‘트리치노폴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냄새도 그 시가와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기존의 지식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연역적 추론으로 범인이 “트리치폴리노 시가를 피웠다”라고 확신한다.

데이비드 핸리 프로스톤이 처음 그렸던 일러스트레이션. 왼쪽에서부터 왓슨 박사, 홈즈, 레스트레이드 형사, 그렉슨 형사.

사건 해결의 전모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후, 셜록 홈스는 그동안 자신이 어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추리를 했는지를 왓슨 박사에게 설명한다. 홈즈의 설명과 전체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각 과정의 내용과 사용한 논리적 추론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번 사건이 ‘살인’이고 ‘독살’이라는 추리

사건 현장을 방문한 홈즈는 방 안의 시신을 들여다보며 매우 이상한 점을 감지한다. 시신은 바닥에 누워 있고, 주먹은 쥔 채로, 얼굴은 공포에 질린 채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몸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고 피 한방을 흘리지 않았다. 방에는 격투 흔적도 없고, 가구나 창문도 깨지지 않았다. 홈즈는 침착하게 방안을 관찰하면서, “이 죽음은 과연 자연사일까, 자살일가, 살인일까?”라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던진다.

그는 각 가능성을 하나씩 점검하며 진실에 다가간다. 먼저 자연사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시신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고, 몸의 긴장이 풀리지 않은 채 주먹을 꼭 쥐고 있는 점은 순한 죽음과는 맞지 않다.

자살일 가능성도 검토한다. 그러나 방 안에는 흉기나 독극물, 자해의 흔적이 없고, 구체적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피해자의 몸에는 상처가 전혀 없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홈즈는 자연사와 자살의 가능성을 제거한다.

그렇다면 남는 건 타살, 즉 누군가에 의한 살인뿐이다. “불가능한 것들을 제거하고 나면, 아무리 믿기 어려워도 남은 것이 진실이다”라는 제거법의 원칙을 따른 것이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죽였느냐”다. 그는 시체를 다시 관찰한다. 몸에는 외상도 없고, 출혈도 없으며, 내부 장기의 손상 흔적도 없다. 격투 흔적이 없기에 물리적인 힘으로 인한 죽음은 아니다. 홈즈는 다시 머릿속에서 “혹시 독살은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피해자의 입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를 바탕으로 ‘독살’이라는 잠정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결정적 증거가 없다.

며칠 후, 두 번째 피해자 스탠거슨이 살해당한 호텔 방에서 작은 약병 하나가 발견된다. 레스트레이드 형사에게서 약병을 건네어 받은 홈즈는 이것이 살인의 도구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검증에 들어간다. 약을 병들어 죽어가는 강아지에게 먹여 보기로 한다.

병 안에는 작은 알약 두 개가 들어 있다. 하나는 무색, 다른 하나는 색이 조금 다른 알약이다. 알약 중 하나를 강아지에게 먹이지만 멀쩡하다. 곧이어 나머지 알약을 먹인다. 강아지는 즉시 경련을 일으키며 죽는다. 이로써 “피해자도 이렇게 독약 중 하나를 먹고 죽었을 것”이라는 가설 역시 매우 강력해진다.

이처럼 홈즈는 사건의 본질은 살인이고, 수단은 독이라는 점을 가능성을 하나씩 지워가며 진실을 좁히는 제거법과, 관찰과 실험으로 가설로부터 예측되는 결과를 확인하는 가설-연역법으로 밝혀낸다.


범행 동기는 복수라는 추리

두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직후, 홈즈는 그 사건이 단순한 강도나 정치적 암살, 혹은 여성을 둘러싼 감정적 범죄 중 어떤 동기에 해당하는가를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는 먼저 세 가지 가설을 세운다: “이 살인은 절도를 목적으로 한 것일까?”, “혹시 정치적 음모가 얽힌 사건은 아닐까?”, “아니면 여자 문제, 즉 개인적 감정이 얽힌 복수극일까?”

2장-04(제퍼슨 호프와 루시 페리어.).png 제퍼슨 호프와 루시 페리어.

먼저 절도 목적이라는 가설부터 살펴본다. 피해자인 드리버와 스탠거슨은 모두 일정한 재산을 갖고 있었고, 사건 당시 값비싼 물건들도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시신 옆에는 지갑, 시계, 보석 등 금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반적인 절도 범죄에서는 가장 먼저 가져갈 물건들이 전혀 손대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점은 중요한 단서다. 홈즈는 이 사실을 통해 “범행의 목적이 금전은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음으로 홈즈는 정치적 목적의 암살 가능성을 의심해 본다. 하지만 정치범들은 임무를 끝내면 재빨리 달아나는 반면, 범인은 느긋하게 행동했고 온 방에 발자국을 남긴 것으로 보아 현장에 오래 지체했다. 따라서 이 가설도 기각된다.

이제 남은 건 개인적 원한, 특히 여자 문제에서 비롯된 복수라는 마지막 가설이다. 홈즈는 이 가설이 성립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 피해자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그들은 모두 미국에서 왔고, 같은 하숙집에 묵었으며, 과거 종교 공동체와 관련된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범행 현장에서 피로 쓰인 ‘RACHE(복수)’라는 단어가 홈즈의 시선을 끌었다. 홈즈는 이 단어를 보고 독일어로 ‘복수’를 뜻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단어가 우연히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범인이 남긴 의도적인 메시지라고 본다. 범인의 목적이 바로 복수라는 점이 점점 분명해진다. 이 지점에서 홈즈는 가설-연역법을 사용한다.

· 가설: “살인의 동기는 복수다.”

· 예측: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과거에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했을 것이다.”

· 사실 확인: ▴드리버와 스탠거슨은 같은 종교 집단 소속이었다. ▴제퍼슨 호프라는 이름의 옛 연적을 피하기 위해 법의 보호를 요청한 적이 있다. ▴호프는 현재 유럽에 체류하고 있다.

예측과 확인한 사실이 일치하면서 가설이 검증된 것이다.

더불어, 홈즈는 첫 번째 현장에서 발견된 여성의 결혼반지에도 주목한다. 만약 도둑이 목적이었다면 가져갔을 물건이었다. 그런데 범인은 피살자에게 죽었거나 자기 옆에 없는 어느 여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그 반지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홈즈는 이 반지가 피해자들과 관련된 어떤 여성, 즉 과거에 이들이 상처 입힌 여인을 상징하는 물건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결국 이 모든 조각들을 조합해 보면, 살인의 동기는 금전도, 정치도 아닌 ‘사랑과 복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홈즈는 ①절도, ②정치적 암살이라는 가능성을 제거법을 통해 배제했고, ③복수극이라는 가설을 세운 뒤, ‘피해자들의 과거’와 ‘현장의 단서들’을 통해 그 가설이 타당한지를 검증하는 가설-연역법을 활용했다.

1890년대 초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 당시 이 도시의 말들이 하루에 약 1,000톤의 배설물을 생산할 정도로 교통의 큰 축을 담당했다. 출처= 게티 이미지

범인은 마부이며, 아직 그만두지 않았다는 추리

홈즈는 브릭스턴 로드 살인 현장 부근에서 마차 바퀴 자국을 보고 말이 주인 없는 상태에서 한동안 서성거렸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살인 현장에 있던 사람은 두 명이고 말이 주인 없이 서성거렸다면, 마부가 피해자 드리버와 함께 그 집에 들어간 것”이라고, 현상에 대한 가장 그럴듯하고 자연스러운 설명을 채택하는 가추법을 이용해 확신한다.

이 확신은 “런던에서 다른 사람을 미행할 때 마부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일반적 사실과 만나 다음의 핵심 가설로 이어진다: “범인은 마부로 변장하여 자신이 직접 모는 마차를 이용해 도주와 범행을 반복했을 것이다.” 당시 런던 마부는 어디에서든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직업이며, 마차를 이용해 사람을 실어 나르고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동 수단과 위장이 동시에 가능한 완벽한 은신처였기 때문이다.

이 가설은 ▴스탠거슨의 시신이 발견된 호텔 근처에서도 동일한 인상착의의 인물이 목격되고, ▴호텔 방에서 ‘J. H.(조너선 호프)는 유럽에 있음’이라고 쓰인 한 달 전 전보가 발견됐으며, ▴베이커 거리의 소년들(‘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이 런던 전역의 마차장을 수색해 제퍼슨 호프라는 마부를 찾아냄으로써 확인된다.

이렇게 홈즈는 범인이 마부로 위장해 활동 중이었다는 사실을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예측하는 결과를 실제 관찰과 조사로 확인하는 방식인 가설-연역법으로 증명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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