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에게

어른이 되었을 너희에게

by 준희최

사랑하는 나의 딸들에게.


어른이 되었을 너희에게

아빠는 아주 오래된 편지를 쓴다.


어젯밤, 나란히 잠든 너희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단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아빠는 문득 아주 먼 미래를 상상했어.

너희가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갈 그날의 모습을.

그리고 그날, 너희의 마음속에 아빠가 어떤 사람으로 남아 있을지를.




아빠는 '아버지'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늘 복잡한 마음이 들어.

무섭고, 두렵고, 한편으로는 든든하고, 강하고, 자랑스러웠어.

아빠의 아빠는 정말 강하셨거든.

감사하고 사랑하지만, 살을 맞대본 적은 없었고

이야기를 나눈 기억보다, 듣기만 했던 기억이 훨씬 많았단다.


그래서 아빠는 너희를 만나 아빠가 되면서,

그분의 좋은 점은 닮고, 안 좋았던 점은 좋은 방식으로 바꾸려 노력했어.

그런데 말이지, 안 좋은 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걸 어떻게 좋게 바꾸는지는 정말 어려웠어.

그래서 좋은 아빠가 되는 게 뭔지, 늘 자신이 없었단다.




내가 받고 싶었던 것들을 떠올리고,

정말 상처가 되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마주해보았어.

그리고 그런 마음을 너희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지.


그거 알아?

너희가 보기엔 아빠가 어른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아빠 마음속엔 여전히 어린아이가 있었단다.

너희의 아빠로서의 어른과, 내면의 아이가 종종 부딪혔어.

그래서 아빠도 완벽하진 않았을 거야.

때로는 너희에게 미안할 만큼 서툴렀을지도 몰라.

너희가 어른이 된다면, 그런 아빠를 이해해주길 바라.




큰딸,


너는 엄마아빠의 첫 아이였지.

어릴 적엔 예민한 편이라 우리도 우왕좌왕했단다.


우리는 너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정말 많이 애썼어.

그리고 마침내,

너의 마음속에 깊고 넓은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너를 키우는 시간은 정말 놀랍고 행복했어.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안 낳았더라면 더 편했을 거라고 말하지만,

아빠는 너를 키우며 그런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단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이렇게 감사한데 말이야.


너는 늘 아름다운 언어와

충만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였어.

사려 깊고, 어떤 일이든 열정을 다하는 사람.


아빠는 너를 믿는다.

무엇이든, 너는 잘 해낼 거야.




작은딸,

너는 언니와 함께 크느라 항상 무언가 부족했을지도 몰라.

뭐든지 언니랑 나눠야 했겠지.


그래서 아빠는 네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더 애썼단다.

그 마음, 네가 알고 있었을까?


넌 고집이 세고 단단한 아이야.

아빠는 처음엔 그 고집을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빠의 잘못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


그래서 그 후로는 널 기다려주려 노력했단다.

혼내기보단 설명하고,

혼내야 할 때는 꼭 안아주고 너의 마음을 어루만지려고 했지.


아빠의 어린 시절을 가장 많이 닮은 아이, 너.

그래서인지 가끔은 아빠 마음이 시리고 애틋했어.

우리 둘째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건 아빠로선 가장 큰 성공이야.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의 속상함.

아빠도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


실패해도 너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넘어져도 여전히 대단한 아이야.

자신을 믿어도 괜찮아.


넌 늘 조심스럽고, 직관이 뛰어난 아이야.

무엇을 하든, 너만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훌륭하게 해낼 거라고 아빠는 믿는다.




아빠가 너희에게 단 하나의 선물을 남길 수 있다면,

그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완벽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해.

자신을 아끼지 않으면, 결국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거든.

아빠는 이 마음을 배우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단다.

그리고 알아도 쉽게 바뀌지 않아서, 지금도 연습 중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빠는 너희가 '평범한 날들을 사랑할 수 있길' 바라.

화려한 성공이나 대단한 성취가 아니어도 괜찮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똥국' 농담을 하며 밥을 먹고,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고,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으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기적이란다.




혹시 언젠가 너희가 어른이 되어

이 글을 읽게 되는 날이 오면,

아빠의 지난 시간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으면 해.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아빠는 엄마를 만났고,

너희를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너희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었단다.


그리고 이 글 속에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기에 표현된 모습이 그분들의 전부는 아니란다.

그건 아빠 마음 속 한 조각일 뿐이야.

그분들도 그 시대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단다.


우리의 역할은,

우리가 받았던 그 유산을,

조금 더 따뜻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다음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

그걸로 충분하단다.


너희의 미래에

단순한 행복이 가득하길,

기적 같은 보통날이

늘 너희 곁에 머물기를,

간절히 바라고 축복한단다.


사랑한다.


아주 많이, 아주 오래도록.


– 너희를 사랑하는 아빠가

keyword
이전 26화세상의 모든 보통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