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답장

by 준희최

아버지.

아마 이 편지는 부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저의 마음을 온전히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기억하시나요.
전화는 늘 엄마와 했지만, 편지는 늘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엄마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네가 아버지한테 편지를 쓰는 게 신기했어.”


그때 저는 군대에서 뭔가 깨달음을 얻고 싶었어요.
제가 넘어서야 할,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었거든요.
그건 아버지였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다가가고 싶었어요.
그 말은 곧, 늘 멀게 느껴졌다는 말이겠지요.
그건 아마 저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주 어릴 적, 조심스러워하시던 아버지가 기억납니다.
까끌한 수염과 낮게 웃던 목소리.
그건 5살 이전의 기억이라 희미하지만,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기억은, 현관문에 내동댕이쳐졌던 날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저는 아버지께 말실수를 했고,
그대로 뺨을 맞고 문밖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때 계단을 오르던 윗집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버지는 "쫓겨난다"며 문을 잠가버리셨고,
저는 울지도, 매달리지도 않고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는 울며불며 저를 찾으셨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왜 돌아왔냐며 또 때리셨습니다.

이번엔 뺨 대신 엉덩이였어요.


그때의 일을 왜 이리도 자세히 기억하냐면,
그게 멀어짐의 시작,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공포의 대상이 되셨고,
저는 그 순간을 수천 번 되돌아보았습니다.
아이를 그렇게 때리고 욕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돈가스, 게임기,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신 기억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해주셨던 따뜻한 순간들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왜 그리 멀었을까요.
늘 벽 뒤에 계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게 아이였던 제 문제였을까요?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도 그렇지만, 미움과 원망도 그렇습니다.
"너만 아니었어도"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그게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없지는 않았고, 적지도 않았을 겁니다.


언젠가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다. 그때는 다 그랬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힘들다고 다 그렇게 살진 않더라고요.


원망의 말을 쏟아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그날의 옳고 그름은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아버지가 저를 사랑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의 상처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니까요.


저 또한 같은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당신께 다가가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관계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근본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가끔 찾아뵙고, 안부를 묻고, 함께 밥을 먹는 것.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기보다,

이만큼의 거리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아마도 슬프고도 평화로운 우리의 최선일 것입니다.


아버지,

저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인정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저는 저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당신이 주지 못했던 그 모든 따뜻함을,
저는 제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전하며 살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당신의 아들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자 마지막 효도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이 편지를 접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의 아버지.


나의 첫 번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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