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쉼

나의 두번째 호흡

by 준희최

오늘도 나는 일을 하고,

운전대를 잡고,

아이들을 씻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위에서 조용히,

나의 숨을 쉰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예전에는 그저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거리의 모습이,

오늘은 한 장면 한 장면,

정지 화면처럼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신호등의 붉은빛,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무심한 얼굴,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로수의 그림자.


마치 그 모든 것이

내가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어느새 힘이 풀려 있다.


아이들을 씻기는 시간.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욕실 안,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말리는 엄마의 다그침 속에

샴푸 거품이 공중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작은 어깨 위로 따뜻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나는 아이의 젖은 등을 닦아주며

이 작은 몸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를 가만히 느낀다.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반복되는 의무가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

내게만 허락된

짧고도 눈부신 축복의 시간이다.


하루의 끝,

잠든 아이들을 확인하고 나온 아내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더 이상 ‘의아함’이 서려 있지 않다.


그 자리에는

고단함과,

그보다 더 깊은 신뢰와 평온이 담겨 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같은 어둠을 바라본다.


그녀의 숨소리가

내 숨소리에 조용히 겹쳐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얼마 전 나는

‘두 번째 인생’이라는 글자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의 숨 고르기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돌덩이를 삼키기 위한,

폭풍우를 앞둔 불안한 멈춤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안다.


나의 두 번째 삶이란,

이 모든 평범한 순간 속에서

온전한 ‘숨’을 쉬고,

그 존재 자체로 깊은 ‘쉼’을 얻는 것이었음을.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호흡 속에 머무는 것.


나는 오늘도

숨을 쉰다.

쉼을 얻는다.


그리고,

삶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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