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기도
여덟 살, 열병을 앓던 여름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모든 빛이 흐릿해지던 그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했던 하나의 풍경이 있다.
창가에 앉아,
기도하던 어머니의 뒷모습.
나는 땀에 젖은 채
이불을 목까지 덮고 떨고 있었다.
몸은 불덩이 같았지만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했고,
천장이 쏟아질 듯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눈을 감고 몸을 뒤척이며,
어둠 속을 하염없이 헤매고 있었다.
의식의 늪을 헤매던 그때,
아주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희미하게 눈을 뜨자,
창가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계신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어둠 속에 노랗게 번진 그 불빛조차
열에 들뜬 내게는 눈이 부셨다.
엄마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저 엄마가 나 낫게 해주려고 기도하는구나 생각했다.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엄마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씩 흔들리며
어둠 속에서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떨리는 어깨가 흐릿한 시야에 한참 머물렀다.
어린 나에게 엄마는 늘 불쌍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자주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늘 그 앞에서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아빠를 위해서
아침마다 과일과 채소를 갈아 주스를 만들곤 했다.
그런데도 엄마의 기도에는,
정작 당신 자신을 위한 간구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속상했다.
다시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동안,
이마 위에는
차가운 물수건이 몇 번이고 새로 얹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 때,
어머니는 여전히 창가에 앉아 계셨다.
손에는 낡은 성경책이 들려 있었고,
이제는 기도와는 다른,
차분하고 잔잔한 목소리로 성경을 읽고 계셨다.
나는 또 한참 그 모습을 소리 없이 지켜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엄마의 실루엣은 길고 아름다웠다.
나는 엄마의 그림자를 게슴츠레 바라보며,
내 속눈썹으로 몰래 천사의 날개를 붙여주었다.
아침이 밝고,
열이 내린 후
내 머리맡에는 펼쳐진 성경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그 밤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이.
나는 손을 뻗어 그 페이지를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곳에는,
밤새 내린 이슬처럼
마르고 번져 있던 눈물 자국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얼마 전,
큰아이가 열이 펄펄 끓던 밤이 있었다.
주말이라 병원 문은 닫혔고,
해열제를 먹여도 열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새 물수건으로 작은 몸을 닦아내고,
뜨거운 손발을 주무르며
아내와 나는 무력하게 아이 곁을 지켰다.
어둠 속,
스마트폰 불빛에 비친 아내의 얼굴 위로
깊은 불안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순간,
나는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
여덟 살의 그 밤으로 다시 돌아갔다.
성경책 위에 선명했던,
마른 눈물 자국과 함께.
그때의 나는 몰랐다.
아픈 아이 앞에서,
세상 모든 것이 부질없어지는 부모의 밤을.
오직 자신의 믿음과 간절함에만 기댄 채,
홀로 어둠을 견뎌내야 했던
한 여인의 고독한 무게를.
어머니의 기도와
성경책에 남은 눈물 자국.
그 기억은
사랑하는 존재 앞에서 느끼는 무력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그 불안 속에서 길어 올리는
작지만 단단한 힘에 대한
아주 오래된 이야기였다.
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의 아픈 밤을 지새울수록,
나는 그 밤의 풍경 속으로
더욱 깊이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마른 눈물 자국 위에서,
나의 두 번째 삶이
조용히 채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부모님의 눈물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마른 눈물 자국이 품고 있던
밤의 무게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강판에 손과 함께 갈아냈던 야채주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읽으시던 성경책.
그 오래된 풍경은 오늘도 내 마음에 머물러,
조용히 나를 감싸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