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동물원에서
나는 오랫동안 길 잃은 아이였다.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던.
절박하게 느린 걸음
언젠가 내게 내밀어졌던
그 손길들이,
다시 다른 길 잃은 다른 아이의 걸음을
가만히 붙든다.
초봄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흘렀고,
따스한 바람이 동물원 구석구석을 스치듯 지나갔다.
아이들은 잔디밭에 바짝 엎드려
네잎클로버를 찾겠다며 서로 얼굴을 부딪혔다.
아내와 나는 그 웃음소리를 한참 듣다가,
쌀쌀한 봄 공기가 가볍게 뺨을 스치는 걸 느끼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돌아오는 길,
동물원 입구로 이어지는 길은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느긋한 걸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만치서 한 아이가 흐느끼며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부모가 앞서 가고 있는 줄 알았다.
떼를 쓰다가 뒤처졌나 보다 생각했지만,
앞서 걷는 부부가 서로를 마주보며 웃는 순간,
나는 그들이 그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아이를 찾는 어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쿡, 내려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고 나지막이 물었다.
“괜찮아? 엄마, 아빠는 어디 계셔?”
아이는 대답 대신,
조심스럽게 내 옷자락을 잡았다.
나는 가만히 아이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가방에서 물을 꺼내는 아내의 모습 뒤로,
내 아이들의 눈빛이 떨리고는 있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누군가는 부모를 찾아 나섰고,
누군가는 동물원 직원을 부르러 갔다.
그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따라 걸어왔던 거겠지.
사람들과 상황을 주고받는 동안,
조그마한 온기가 내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순간, 시린 기억들이 스쳤다.
길을 잃은 나를 끌어안아준 어느 아주머니의 부드러운 시선.
개에게 쫓기던 나를 잡아끌던 아버지의 강인함.
술에 취해 울던 내 등을 토닥이던 교회 집사님의 온기.
서툴고,
날카롭고,
때로는 따뜻했던,
그 아득함이 스며들었다.
잠시 후,
직원이 다가와 “잘 인계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나를 놓아두고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 아이의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 아이들이 물었다.
“그 아이, 엄마 찾았을까?”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분명 찾았을 거야.
그 아이 엄마아빠도, 분명 그 아이를 찾고 있었을 테니까.”
아이들은 금세 잠들었다.
창밖으로 봄밤의 불빛이 천천히 흘렀고
나는 땅에 끌리던 그 작은 뒤꿈치를 떠올렸다.
그날로부터 수많은 계절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아이를 생각한다.
내 옷깃 어딘가에
그 작은 온기가 조용히 매달려 있는 듯하다.
혼자서 외롭게 걸어왔다 생각한 이 길이,
어쩌면 조용히 따라온 많은 이들의 숨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날엔 그 아이가 되어,
어떤 날엔 뒤꿈치를 따라가는 어른이 되어,
우리는 누군가의 울음 곁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 잃은 아이의 눈빛은
내 안에 오래 숨어 있던 어린 날을 불러냈습니다.
혼자 걷던 그 길과
내 곁을 지키던 숨결
이제는 누군가의 곁에 서 있는 어른이 되어
그 날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