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 홀로서기
모든 이야기는,
가장 어두운 방의 거울 앞에서 시작된다.
빗소리만이 유일한 위로였던 그날,
세상의 끝에 홀로 서 있던 소년은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 섰다.
요즘 큰아이는 학교에서 매주 글쓰기를 한다.
반 아이 다섯 명에게 ‘어린이 작가상’을 준다는 말에
아이는 신이 났다.
어려서부터 언어 감각이 남달랐던 아이.
나는 아이의 마음속 언어를 그대로 존중해주고 싶어,
글의 구조만 가볍게 도와주는 정도였다.
지금까지 다섯 번 중 세 번이나 작가상을 받았다며
아이는 수줍게 자랑했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아빠도 글 써? 언제부터 썼어?”
음… 내가 언제부터 글을 썼더라.
해맑은 질문에 기억의 댐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쏟아지는 장면에 휩쓸리듯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열일곱의 어느 오후로 돌아갔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빗줄기가 땅을 두드리고 있었다.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우산이 파르르 떨렸다.
예보된 소식 덕에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우산을 천천히 내렸다.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때렸다.
애써 지우려 했던 집 안의 장면이 떠올랐다.
닫힌 문 너머의 소리, 뒤엉킨 거실.
고개를 흔들어 장면을 털어낸다.
비는 더 세차게 쏟아졌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소란과 혼란을
지워버리려는 것처럼.
나는 우산을 접었다.
눈조차 뜨기 힘든 빗속에,
그저 서 있었다.
누군가—보이지 않는 존재가
이 혼란을 멈춰주길,
나를 안아주길 바랐다.
땅이 나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어깨는 무겁고, 발끝은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깊고 어두웠다.
귓가엔 여전히 아버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거칠고 메마른 말투.
고개를 흔들었지만,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위태로움은 가시지 않았다.
“왜 신은 응답이 없는가.”
기도는 닿지 않았다.
교회에서 들었던 사랑의 약속과
속삭이던 기도 소리, 울부짖던 외침 같은 것들이
빗물과 함께 스며들었다.
여전히 작고 무력한 나의 존재를
허공을 향해 되물었다.
가슴을 치며,
자신을 미워했다.
어두운 집에 도착했을 때
불은 꺼져 있었고,
온 집안엔 기이할 만큼 고요가 감돌았다.
밖의 광란과는 달리,
집 안은 깨끗했지만 싸늘했다.
젖은 옷을 벗을 힘조차 없어
그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입은 채 샤워기 아래 섰다.
쏟아지는 물이
다시 한번 나를 덮쳤다.
눈앞에는 자꾸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날, 누군가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나는 어색한 핑계를 대고
패밀리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선연했다.
내 마음으로는
그 웃음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친구들이 건넸던 말들이 떠올랐다.
"힘내, 하나님이 네 아픔을 알아주실 거야."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그 말들은 내 안의 얼어붙은 슬픔을 녹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 따뜻함이
내 안의 깊은 한기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둔 신도,
아버지도, 어쩌면 세상 전부가.
그런데 그 지독한 원망의 끝에서,
문득 기이한 평온과 함께 하나의 진실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고 쫓겨난 그날.
어쩌면 그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끝없는 고독의 계보, 그 어디쯤에서
나는 그저 홀로 서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것.
더 이상 누구의 구원도,
이해도 바라지 않아도 된다는 서늘한 자유.
그것은 어쩌면 신이 내게 내려준
가장 잔인하고 유일한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샤워를 마치고
젖은 옷을 벗었다.
거울에 비친
핼쑥한 얼굴을 바라봤다.
‘못난 얼굴’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이 모든 걸 혼자 견뎌내야 하는 나를
조금은 다르게 보았다.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어차피 네 몫이야.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야.”
그날 밤,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던 오후의 혼란도,
샤워기 아래에서의 침묵도,
거울 속 나의 표정도.
모두 그날의 글로 흘러들었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촛불을 켜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을 밝히진 못했지만,
적어도 눈앞의 한 걸음은 비출 수 있었습니다.
열일곱의 그날,
처음으로 켠 그 희미한 불빛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줄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