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울고 싶은데, 잘 안돼
어떤 울음은,
달래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맞아주어야 하는 비와 같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 아이의 울음 속에서
세상 가장 고요하고도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마 생후 몇 달,
어쩌면 1년 남짓이었을 것이다.
새벽의 불청객처럼 찾아오던 아이의 울음은
우리 부부에게 난해한 암호 같았다.
잠에서 깨면 아이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었다.
땀이 흥건히 배일 만큼 한두 시간을 내리 울었다.
어르고, 달래고, 안아보아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책이든 블로그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찾아보았지만
해답은 없었다.
울음 앞에서 우리는
무력감과 좌절을 끌어안은 채,
매일 밤을 버텨야 했다.
새벽의 적막 속,
아이의 울음은 인내심을 바닥까지 긁어내리는
날 선 비수 같았다.
지쳐 쓰러지듯 밤을 넘기면서도
우리는 끝내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마음으로
아동 상담센터를 찾았고,
그곳에서 의외의 해답을 들었다.
문제는 없었다.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아이가 이 시기를 무사히 통과하도록
그저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
그 말은
우리를 가만히 멈춰 서게 했다.
그 후, 우리는 다그치지 않았다.
울음을 멈추게 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이 곁에 조용히 함께 있어주었다.
울어도, 멈추지 않아도,
곁에.
기다림은 조금씩 변화를 만들었다.
악몽 같던 시간은 서서히 사라졌고,
아이의 울음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시절은
이제 지나간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이도 자라
어느덧 일곱 살이 되었다.
말도 통하고,
자기 주장도 분명해진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주말,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
차에서 잠들었던 아이는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옛날처럼 울기 시작했다.
온몸을 뒤틀며 울고,
숨이 넘어갈 듯 흐느꼈다.
기다려주던 기억은 희미해졌고,
나의 인내심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소리쳤다.
“그만 울어! 이제 다 컸잖아! 왜 우는 건데!”
그 순간,
아이의 울음이 뚝 그치지 않은 채
잔뜩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나, 그만 울고 싶은데... 잘 안돼...”
그 한마디가
내 심장을 꿰뚫었다.
그 말은
차가운 새벽 공기처럼 마음으로 밀려들어와
이내 따뜻한 온기로 번져갔다.
나는 깨달았다.
울고 있는 그 작은 몸 안에는
울음을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내 아이가 갇혀 있다는 것을.
마치 유리병 속에 작은 새처럼,
육신이라는 껍데기에 부딪히며
감정의 파동 속에 허우적대는 영혼.
그 격렬한 울음은
그 작고 갇힌 존재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내 안의 짜증과 분노는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아이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젖은 볼을 뺨에 붙이고,
떨리는 어깨를 토닥였다.
이건 아이의 잘못도
다그쳐야 할 버릇도 아닌
내가 쓰다듬어야 할
작은 존재의 아픔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만 울고 싶어도 안 되는 거지?
아빠가 옆에 있어줄게.”
내 속삭임에
아이의 울음은
거짓말처럼, 그러나 천천히 잦아들었다.
그 잦아드는 울음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 육신에 갇힌 영혼이 아닐까.
말과 표정, 몸짓이라는
한정된 창을 통해
비로소 바깥과 연결되려 애쓰는—
불완전하고도,
사랑받고 싶은 존재들.
그리고 그 울음은,
내면 깊은 곳에서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장면 속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화를 끊으며 소리치던 아버지의 뒷모습.
설거지를 하며 작은 한숨을 쉬던 아내의 어깨.
냉장고 가득한 밑반찬들.
그 안에 담긴, 말 없는 시간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겉모습이나 행동 너머에 있는
‘진짜 아이의 모습’을 보려 애썼다.
모든 울음과 짜증, 감정의 파장은
영혼이 보내는 서투른 신호일 뿐이라고.
그 신호에 귀 기울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소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아이의 그 작은 속삭임은
나의 '두 번째 삶'의 첫 번째 언어가 되었다.
기다림.
그것은,
내가 앞으로 평생 배워나가야 할,
가장 어렵고도 다정한 사랑의 언어였다.
사랑은,
때로 가장 시끄러운 울음 속에서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넵니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는 잠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끄고
한 사람의 영혼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