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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얼굴들, 그리고 익어가던 시간

그 시절 소중한 다섯 친구

by KOSAKA

중학교 졸업 무렵까지 내 곁에는 다섯 명의 친구가 있었다. 각자의 얼굴과 이야기는 달랐지만, 그 시절의 나를 비추는 다섯 개의 거울처럼 남아 있다.


첫 번째는 어머니 교회 친구의 딸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면서 처음 만났다.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을 지녔고, 지금도 페이스북을 보면 그 미모는 여전하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녀는 결국 신학대로 진학했다. 중학교 시절 겨울방학, 그녀는 책을 들고 신림동에서 정릉까지 찾아와 함께 공부했다. 사춘기의 남녀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제대로 공부했을 리는 없지만, 해가 지면 나는 늘 그녀를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그 만남은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지만, 끝내 종교의 벽을 넘지 못했다.


두 번째는 연립주택 건물주의 아들이었다. 그는 꼭대기층, 마치 팬트하우스 같은 공간에 살았다. 복층 구조의 방은 그 나이 또래로는 상상하기 힘든 세계였다. 한쪽에는 컴퓨터 두 대가 놓여 있었고, 다른 방은 벽면을 가득 채운 LP판으로 빼곡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을 했고, 피터 세트라의 노래를 들었다. 음악 감상실은 어린 시절 내게 가장 세련된 공간이었다.


세 번째는 그 근처에 살던 또 다른 친구였다. 집안 형편이 건물주 아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중간 이상은 되는 듯했다. 우리는 보드게임을 하고 만화를 함께 보며 어울렸다. 하지만 두 친구를 내 집으로 초대한 기억은 없다.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내 안의 가난이 부끄러움으로 작동했기 때문이었을까.


네 번째는 나와 같은 신림6동에 살던 친구였다. 그 집도 작은 빵집을 했고, 나처럼 일본과 일본어에 관심이 많았다. 몇 권 되지 않는 일본 만화를 바꿔 읽고, 서브컬처에 관한 소문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졌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어울렸지만, 돈 문제로 다투고 헤어졌다. 그 나이에 돈이라 해봐야 몇백 원, 많아야 몇천 원이었을 테지만, 관계는 거기서 끊겼다. 오랫동안 소식은 끊겼지만, 부모님은 얼마 전까지도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곤 하셨다.


마지막은 국제 펜팔로 알게 된 일본 소녀였다. 1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졌다. 그 덕분에 나는 일본어 공부에 눈을 떴고, 그녀가 좋아하던 마츠다 세이코와 안전지대, 사이토 쿄코의 음악에도 빠져들었다.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일본 문화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편지는 변했다. 일상의 이야기 대신 교리를 강조하며 나를 전도하려 했다. 그제야 그녀가 통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관계는 거기서 끊겼다. 짧았지만, 내게는 세계와 연결된 첫 경험이자 동시에 좌절의 기억으로 남았다.


다섯 명의 친구들. 서로의 배경과 길은 달랐지만, 그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의 사춘기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익어갔다. 어린 시절의 우정과 갈등, 설렘과 좌절은 이제 저마다 다른 풍경이 되었지만, 그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계절처럼 내 안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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