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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벽에 코를 대고 지낸 중3의 겨울

독서실과 참고서로 느끼는 부모님의 사랑

by KOSAKA

그 시절 그 고등학교에는 반편성고사’라는 것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시험은 아니었지만,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의 학력을 평가해 반을 배치하는 절차였다. 평등교육을 내세워 우등반·열등반을 노골적으로 나누지는 않았지만, 교실 안에서는 자연스레 서열 구조가 만들어졌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앞자리에, 보통 수준은 중간쯤에, 하루 종일 엎드려 자는 학생들은 뒷자리에 배치되었다. 결국 한 반 안에서 우반과 열반이 동시에 운영되는 셈이었다.


그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부모님은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독서실을 끊어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과외는커녕 학원조차 보내기 힘든 형편에서 ‘독서실 등록’은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투자였다.


독서실은 개인별 칸막이가 쳐진 설계였다. 처음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한 나는 양옆 칸막이와 바로 위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마치 벽에 코를 대고 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이라는 나이의 씩씩함으로 버텼다. 그 공간은 답답했지만, 동시에 내게 주어진 가장 집중된 공부의 자리이기도 했다.


시험 과목은 영어와 수학이었다. 참고서 선택은 그 자체로 큰 고민거리였다. 그 시절 학생들에게 참고서는 단순한 학습 도구가 아니었다. 어떤 책을 들고 있느냐가 곧 자기 공부 태도를 증명하는 것이었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화제이기도 했다. 수학은 ‘정석’과 ‘해법’이 양대 산맥이었다. 정석은 설명이 친절하지만 너무 방대하다는 평가가 있었고, 해법은 문제 풀이가 많아 실전 감각을 키우기에 좋다고 했다. 영어는 ‘성문 기본’과 ‘성문 종합’이 있었다. 기본은 얇고 시작하기 편했지만, 종합은 두툼한 책 속에 문법과 독해가 체계적으로 담겨 있었다. 나는 오래 망설이다 결국 수학은 정석, 영어는 성문 종합으로 선택했다. 책은 두꺼웠고, 글씨는 빽빽했다. 하지만 그 두 권을 들고 독서실에 들어갈 때, 묘한 무기감을 느꼈다. 마치 전쟁터에 입성하는 병사가 칼을 손에 쥔 기분과도 같았다.


마침내 반편성고사 날이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시절 수많은 중간·기말고사를 치르면서 시험 자체는 이미 익숙했지만, 중요한 입시 경험이나 대형 대회는 없었던 터라 그저 시험 중 하나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첫 교시는 영어였다. 중학교 시절 나의 멘토였던 영어 선생님의 지도가 빛을 발했다. 시험지를 펼치는 순간 강한 기시감이 몰려왔다. 지문은 낯설지 않았고, 문제는 익숙했다. 하나하나 반갑게 맞이하며 답을 적어 내려갔다. 시험이 끝날 무렵에는 오히려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반편성고사, 별거 아니네.’ 그렇게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두 번째 시간, 수학은 정반대였다.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부터 숫자가 서로 엉켜 보이고, 기호는 뒤죽박죽 섞여 들어왔다. 마치 난독증이라도 걸린 듯 혼란스러웠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온 학생에게 미적분 문제를 내서 어쩌자는 건지, 문제를 읽는 것조차 버거웠다. 답안지에는 자신 없는 숫자 몇 개만 흩뿌려진 채 시험은 끝났다.


며칠 뒤 발표된 성적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어는 100점, 수학은 50점. 극명하게 갈린 점수였다. 부모님은 성적표를 받아 들고 수학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대신 영어 점수를 여러 번 강조하며 칭찬해 주셨다. “영어는 잘했구나.” 그 말씀이 집안에 울려 퍼지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못난 성적을 감추려는 배려였는지, 혹은 잘한 것만 붙잡아 격려하려는 마음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날, 부모님의 표정 속에서 안도와 걱정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그 점수로 반이 배정되었고, 나는 맨 앞줄에 앉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의 시선과 칠판의 분필 가루를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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