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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빨간불, 인생에 파란불

월간 샘터 9월호 게재글입니다

by KOSAKA

이 브런치북의 시작점이 되었던 '특이점이 온 50대'라는 글이 월간 샘터에서 아래와 같이 변주되어 게재되었습니다.


“바로 치료를 시작하셔야 해요.”
사람은 왜 항상 일이 잘못된 후에야 후회하는 것일까. 몇 달 전, 의사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몸의 신호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건강검진 결과지에 적힌 ‘당화혈색소 12.5%’란 글자가 참으로 아숙했다. 당뇨병 진단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보고 나서야 지난 반년을 찬찬히 돌아봤다.


사실 그동안 몸의 변화가 심하지 않았다. 바지가 점점 헐렁해지고 얼굴이 수척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걸어서 출퇴근하니까 살이 빠지는구나.’ 나중에 체중증을 재보니 17kg이나 빠져 있었다.


입속이 바싹 마르고 기운이 쉽게 달아났으나, 더운 여름 탓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갈증이 심해져 탄산수를 즐겨 마시곤 했지만, 단순히 갈증을 해소한다고만 여겼다. 결국 이 모든 증상들은 병의 전조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무심코 지나친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검진 결과를 받은 뒤 한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이것도 몸이 보내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니 지금부터라도 잘 관리하면 충분히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은 나는 아내의 살뜰한 내조 속에서 식습관 개선에 돌입했다.


모든 식재료의 성분을 꼼꼼히 확인해 밥상을 차리는 아내의 수고 덕에 우리 집 식탁에서 당분이 많은 음식과 튀김 요리는 아예 사라졌고, 밑반찬 슴슴한 국이 올랐다. 회사에서는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가서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먹었고 간식과 술은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때웠을 끼니를 소중히 대하자 음식은 마음과 생각에도 큰 자양분이 되었다.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건강식을 감사히 먹으면 몸은 물론이고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매사에 생기가 넘쳐 기분이 항상 좋았다.


당뇨는 분명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나를 돌보라는 기회로 받아들이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왔음은 앞으로도 삶의 불청객을 맞닥뜨릴 때마다 절망하는 대신 알찬 다짐으로 일상을 채워갈 생각이다.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 인생의 전환점들을 의연하고 감사하게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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