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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책 Check 21화

[단상]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by KOSAKA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을 읽는 일은 현실을 잠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이다. 신문이 세상의 겉을 보여준다면, 소설은 그 속을 보여준다. 하루하루의 사건들은 쉽게 사라지지만, 한 편의 소설은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 내면을 울린다. 독자로서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깊이’ 때문이다. 그것은 감정의 깊이이자, 시간의 깊이이며, 인간 이해의 깊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내면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가족, 동료, 친구조차 그 마음의 전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설은 그 벽을 허문다. 작가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우리는 그 마음을 1인칭처럼 체험한다. 타인의 고통과 욕망, 망설임과 부끄러움을 대신 겪으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함을 체감한다. 그 경험은 실제로 살아보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공감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일은 곧 ‘타인이 되어보는 일’이며, 그것이 인간 이해의 첫걸음이 된다.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하나의 세계를 새로 구축한다는 점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독자는 그 세계 안에서 숨쉬고 생각한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나면, 같은 거리를 걸어도 풍경이 달라져 있다. 평범한 인물이 주인공처럼 보이고, 일상의 사소한 장면이 이야기의 한 구절처럼 느껴진다.


소설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 그 변화는 조용하지만 근본적이다.

또한 소설은 감정의 안전한 실험실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분노와 질투, 슬픔과 절망을 경험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탐구하기는 어렵다. 현실에서 그런 감정은 관계를 해치거나 스스로를 소모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다르다. 주인공의 시련을 따라가며 눈물짓고, 악인의 몰락을 보며 안도한다. 실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무게를 문학이라는 완충 장치를 통해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다. 소설은 감정의 폭발을 허락하되, 현실의 파괴를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설은 인생의 지평을 넓히는 예술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시선, 자신의 경험, 자신의 시대 안에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 그 틀을 벗어난다. 시대를 거슬러 과거의 인간을 이해하고,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다른 나라 사람의 마음을 상상한다. 소설은 세로로는 시간을, 가로로는 공간을 확장시킨다.


즉, 한 인간의 인생을 “종으로 횡으로” 확장하는 통로가 바로 소설이다.


세로의 독서는 인간의 역사와 시간을 이해하게 하고, 가로의 독서는 타인의 세계와 문화를 이해하게 만든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한 생을 살아가면서 수십, 수백 개의 삶을 겪는다. 그 누적된 체험이 바로 인생의 지평을 넓히는 힘이다.


소설은 또한 시간의 예술이다. 현실에서 시간은 일방적으로 흐르지만, 소설 속의 시간은 자유롭다. 몇 초의 장면을 수십 페이지로 늘리고, 몇 년의 세월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선택적이고 불완전한지를 배운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기억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후회와 회한, 망각과 회복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법을 배우며, 그것이 곧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된다.


또한 소설은 사유의 자유를 허락한다. 논문은 결론을 요구하지만, 소설은 여백을 남긴다. 이야기가 끝나도 생각은 끝나지 않는다. 독자는 결말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며, 그 여백 속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세운다. 작가는 세계를 만들지만, 독자는 그 세계를 완성한다. 같은 소설을 읽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감상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읽는 사람만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소설이 살아 있는 이유다.


소설은 때로 치유의 예술이 되기도 한다. 현실에서 말하지 못한 상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 오래된 기억이 소설 속 문장과 만나 언어를 얻는다. 그 순간 독자는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되고, 조금씩 회복한다. 작가의 문장을 통해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우리는 덜 외로워진다. 인간은 결국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를 읽는다. 그리고 소설은 그 자기이해의 가장 깊은 형태다.


그래서 나는 SF를 좋아하면서도 역사소설을 좋아한다.


SF는 미래의 상상력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역사소설은 과거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하나는 시간의 앞을 향한 사유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의 뒤를 향한 성찰이다. SF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묻고, 역사소설은 “무엇이 되어왔는가”를 묻는다. 둘은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지만, 결국 같은 인간의 문제—기억, 선택, 욕망, 생존—을 다룬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장르를 함께 읽으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시간의 어느 지점에서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거와 미래, 회상과 예언의 양 끝이 소설 속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그때 나는 비로소 ‘읽는다는 것’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인생을 가로지르는 사유의 방식임을 느낀다.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게 하고, 이해는 인생의 지평을 넓히며, 그 넓어진 지평은 삶을 견디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권의 소설을 펼친다. 그것이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가장 인간적인 다리이자, 시간과 공간을 잇는 가장 깊은 사유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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