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살인이 넘치는 서사가 왜 영웅담으로 남았는가
삼국지는 보통 “처세의 교과서”, “리더십의 보고”, “의리와 신의의 고전” 같은 말로 포장된다. 서점에서는 경영 코너에 삼국지가 놓여 있고, 기업 교육 콘텐츠는 유비의 리더십, 관우의 충절, 제갈량의 지혜로 시작하곤 한다. 많은 이들이 삼국지를 통해 인간관계를 배우고 조직의 생리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랜만에 삼국지 1권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그런 찬사가 무색할 정도로 이 책이 살인과 배신과 하극상으로 점철된 이야기라는 사실이었다. 폭력은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죽음은 놀라움이나 슬픔의 대상이 아니라 진행을 위한 장치처럼 쓰인다. 누구도 죽음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어떤 등장인물의 목숨도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삼국지의 초반부는 황건적의 난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이미 거대한 폭력의 분출이다. 질서는 무너지고, 지방 관리들은 착취에 가까운 정치를 하고, 민중은 폭도와 관군 사이에서 학살당한다. 이 세계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윤리적 질문도 담지 않는다. 칼을 뽑으면 누군가는 죽고, 죽었다는 사실은 복수의 명분이 되거나 다음 전투의 동기가 될 뿐이다. 삼국지를 고전으로 배웠던 기억과 달리, 이 책은 애초에 잔혹함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기보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이런 장면들 사이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의리’는 사실 매우 적다. 도원결의는 상징처럼 남아 있지만, 그 이후 인물들의 움직임은 거의 전부 정치적 계산과 생존 전략으로 읽힌다. 관우의 충성심조차 유비 개인에 대한 것이지, 대의를 위한 것은 아니다. 조조는 냉혹한 전략가로 묘사되지만, 그 역시 생존과 패권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행동들이 많다. 삼국지 속 인물들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존재’라기보다, 오히려 혼란을 견디기 위해 각자의 방식을 선택한 불안하고 결핍된 인간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야기가 수백 년 동안 명작으로 남았는가. 왜 한 권 가득한 배신과 학살, 음모와 하극상 속에서 우리는 감동을 느끼고, 이 작품을 고전이라 부르는가.
삼국지는 난세라는 무대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질서가 붕괴되면 사람의 선택은 날것이 되고, 욕망과 공포가 그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한 번의 의리, 한 번의 충성, 한 번의 배려가 크게 부각된다. 혼란이 심할수록 작은 덕목도 과장되어 빛난다. 우리가 삼국지를 리더십의 교과서로 읽은 이유는, 영웅들이 특별히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잔혹한 세계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힘은 해석의 여지다. 조조는 폭군인가, 시대를 앞서간 영웅인가. 유비는 인덕의 화신인가, 정치적 연극을 잘하는 인물인가. 제갈량은 초인적 지성을 지닌 전략가인가, 후대가 만든 신화인가. 어느 인물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삼국지가 만들어진다. 고전이란 결국 시대마다 다른 독해를 가능하게 하는 책이고, 삼국지는 그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오늘날 독자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는, 그 안에 인간의 복잡성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다시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본받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들의 연속이다. 배신은 비겁함의 증거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 되고, 전투는 명예를 쌓는 수단이라기보다 개인의 목숨을 연장하는 방법이 된다. 어떤 이는 충성하다 죽고, 어떤 이는 비겁하게 살아남는다. 이 잔혹함은 불편하지만, 그만큼 현실에 가깝다. 삼국지는 인간이 이상적이어야 한다는 환상을 거부하는 대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삼국지는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웅적 미덕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모순을 일관되게 관찰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선하지만도 악하지만도 않으며, 의리와 욕망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잡한 존재다. 삼국지는 그 복잡성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묻는다. 이런 세계에서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붙들 것인가.
삼국지를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느낀 것은,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리더십의 텍스트’라는 이미지가 실은 후대가 만들어낸 해석이었다는 점이다. 삼국지는 애초에 인간의 본질을 기록한 책에 가깝고, 그 속의 영웅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 인간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삼국지는 처세서로서의 효용보다 훨씬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