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는 서로 다른 주제와 서술 방식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거대한 텍스트를 관통하는 목소리가 느껴진다. 마치 작가가 세 권의 책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원으로 그려놓고, 그 원의 과거·미래·현재를 각각의 방향에서 비추는 듯하다.
책은 서로 분리된 채 나란히 놓여 있지만, 읽는 경험은 분절적이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천천히 이동하고, 이동하면서 독자 내부에서 어떤 구조가 재편되는 듯한 감각이 남는다.
『사피엔스』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이 단순히 생물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야기 능력’의 문제라는 전제는 독자를 낯선 시선으로 이끈다. 신화, 종교, 인권, 자본주의 같은 제도들이 결국 인간이 공동으로 믿어온 서사라는 주장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되묻게 된다.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가치와 제도는 얼마나 오랜 시간 축적된 이야기의 결과인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어온 나의 사고는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가. 이 질문들은 개인의 신념을 방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신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탐색하게 만든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방식을 비추는 철학적 거울과도 같다.
이 시선은 『호모 데우스』에서 더 멀리 확장된다. 하라리는 과거를 설명하는 위치에서 미래를 전망하는 위치로 이동하지만, 관점은 흔들리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행동해왔다. 그런데 미래의 세계에서는 그 이야기를 만드는 주체가 인간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선택을 대신하는 시나리오, 인간의 욕망과 행동 양식이 정교하게 추적되고 예측되는 조건, 생명 자체가 기술로 재구성되는 시대. 이러한 전망은 두려움보다는 묘한 당혹감을 남긴다. 지금까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의미와 가치들이 더 이상 고유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당혹감은 하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한다. 기술이 인간의 역할을 재편한다면, 인간의 의미 또한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호모 데우스’란 인간이 신의 영역에 다가가는 존재라기보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이야기의 경계가 확장되는 존재라는 생각에 가깝다.
세 번째 책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는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다. 과거와 미래를 가로질러오던 사유가 현재의 문제에 닿는 순간,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하고 취약하게 보인다. 정치적 양극화, 기술적 불평등, 노동의 불확실성, 집단 정체성의 충돌, 교육의 탈구 — 이것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피엔스’가 말한 인간의 허구적 질서가 균열을 일으키고, ‘호모 데우스’에서 제시된 기술의 충격이 현실에 스며들면서 나타난 결과물이다.
한 장 한 장 독립된 제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파악하기 위한 사유의 연습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것은 공포나 우울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언어가 조금 더 넓어진다는 감각이다. 혼란의 시대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감각 자체가 인간에게는 하나의 의미가 된다.
세 권을 순서대로 읽을 때와 거꾸로 읽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순서대로 읽으면 인간의 기원에서 미래까지 이어지는 선이 명확하게 보인다. 반대로 역순으로 읽으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문제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의 이야기 구조 위에서 형성되어 왔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두 가지 독서 방식 모두 인간의 존재를 넓은 시간 축 위에서 재배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하라리의 3부작은 인간을 하나의 시점에서 고정시키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의 결과이자, 예측의 대상이자, 지금을 살아내는 존재다. 이 셋이 동시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만든다.
이 3부작을 하나의 큰 텍스트로 읽으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서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이 선명해진다. 과거의 인간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서사를 만들었고, 미래의 인간은 기술과 알고리즘이 만든 서사 속에서 자신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 현재의 인간은 이 두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살아간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장면들조차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뉴스에서 접하는 정치적 갈등, 기술이 가져오는 편리함과 불안, 불확실한 노동환경, 개인의 정체성 문제 — 이것들은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온 서사의 연속이다.
인류는 무엇을 믿고 살아왔으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가....하라리는 독자에게 공포나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를 해석하는 시선 자체를 넓히도록 만든다. 철학적 사유란 결국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일인데, 이 3부작은 바로 그 낯섦을 통해 독자를 사유의 상태로 이끈다. 인간이란 결국 자신이 만든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결과 사이에서 끊임없이 위치를 조정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다.
이 세 권의 책을 하나의 텍스트로 읽는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만들어낸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시간의 세 방향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일과 같다. 과거에서 배운 것, 미래를 향해 던진 질문,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세 축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에서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3부작은 완결된 고백이 아니라, 열린 질문이 아닐까.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서사 속에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앞으로의 세계에 남길 것인지를 묻는... 책을 덮고 나면, 그 질문은 조용히 독자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또 다른 사유를 이어갈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