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디지털전환 지연의 3대 상징
오사카 현지에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이들의 아날로그 방식에 깜짝깜짝 놀란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어 보인다. 한국은 이럴 때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얘기해 주면 헤에, 스고이 하고 그걸로 끝이다.
이들도 수년 전부터 정부차원에서 노력을 시작했지만 어려운 상황인 듯하다. 2021년, 일본 정부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이하 DX)을 전담하는 디지털청을 출범시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던 시점이었다. 한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비대면 행정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하며 종이 없는 정부를 지향했지만, 일본은 확진자 정보를 팩스로 주고받고 보건소 직원이 수기로 엑셀에 입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기술 대국으로 알려진 일본의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일본의 DX 지연은 단지 시스템 문제만이 아니다. 세계 디지털 경쟁력 지수(IMD, 2023)에서 일본은 16위로, 한국(6위), 미국(1위), 대만(11위) 등 주요 경쟁국보다 뒤처졌다. 기술력 자체는 여전히 세계 수준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에서는 명백히 후퇴한 모습이다.
그 원인은 일본 사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문화와 제도, 조직의 구조적 특성에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종이문서와 인장(도장)에 의존하는 행정 및 비즈니스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계약서에 인감을 찍고, 물리적 문서를 우편이나 팩스로 주고받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전자결재 시스템 도입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행정절차에서 도장을 없애려는 정부의 시도는 중소기업들의 반발에 부딪혔고, 디지털화는 단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과 관습’의 문제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팬데믹 당시 병원에서 팩스로 보낸 확진자 데이터를 보건소 직원이 손으로 입력하고 이를 다시 중앙정부로 전달하는 구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과 문화의 문제였다.
조직문화 역시 디지털 전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여전히 연공서열과 하향식 의사결정이 지배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상사가 말해야 움직이고, 변화는 위에서 내려와야 가능한 분위기에서는, 디지털 전환과 같은 유연하고 민첩한 변화가 정착되기 어렵다.
젊은 사원의 아이디어가 실현되기보다는, 중간관리자의 승인을 거쳐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 속에서 혁신은 느리게 진행된다. 특히 일본의 기업 구조상,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며, 이들은 자금력과 인재 확보 측면에서도 디지털 전환에 취약하다. 시스템을 도입할 여력도 부족하고, 변화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왜 바꿔야 하느냐’는 태도로 디지털화 자체를 외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적 지연의 또 다른 축은 인재 부족이다. 일본에서는 정보기술(IT) 분야에 종사하려는 인재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컴퓨터공학 분야가 입시에서도 인문계열보다 인기가 낮은 경우도 있다. ‘개발자’가 유망한 직업군으로 각광받는 한국이나 인도와 달리, 일본의 청년들은 여전히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을 선호한다.
기술에 대한 관심도, 교육 시스템의 유연성도 낮은 현실은 IT 인재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문제가 더해지며, 디지털 시스템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행정과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층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은 변화에 대한 저항을 더욱 고착화시킨다. 고령의 경영자나 관료들은 종종 디지털 기술을 신뢰하지 않거나,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청을 야심 차게 출범시켰다. 민관 협력 구조로 설계된 이 조직은 외부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등용하고, 기존 부처 간 칸막이를 해소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하지만 출범 이후 내부 갈등과 관료 조직과의 마찰로 초대 장관이 사임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민간 전문가가 들어갔지만 결국 관료 조직에 흡수되었다’는 비판은 디지털청조차 일본식 조직문화의 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을 말해준다.
물론 전자정부 시스템인 ‘마이넘버’가 점차 확대되고, 일부 온라인 행정서비스는 개선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절차는 복잡하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직관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디지털 시스템은 구축되었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방식이나 시민의 체감도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일본의 디지털 전환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민간 영역에서는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도 존재한다. 소프트뱅크, 리크루트, 라쿠텐, 도요타 등 일부 대기업들은 디지털 기술을 조직 운영의 핵심에 두고, 내부 시스템과 인력 구조를 혁신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전사적인 데이터 전략을 도입하고, 외부 개발자나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속도감 있게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가 전체 사회로 확산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결국 일본의 디지털화는 기술이나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인식과 제도의 병목, 그리고 문화적 저항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의 문제다.
기술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 즉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본은 여전히 로봇, 반도체 소재, 정밀 기계 등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DX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자,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태도의 문제다. 일본은 지금, 그 방식의 전환에 성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경험에 비추어 21세기 내에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