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근대의 흔적
오사카의 중심을 흐르는 도사보리강 위, 콘크리트 고가도로 아래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조 다리 하나가 있다. 이름은 ‘오에바시(大江橋)’. 수많은 직장인과 행인이 무심히 지나치는 이 다리는, 실은 100년 전 일본의 근대도시 설계 사상이 가장 선명히 담긴 유산이자, 수로를 따라 성장해온 오사카라는 도시의 진짜 ‘축’이다. 세련된 곡선을 살린 아치형 구조와 유럽풍 석등이 양옆을 지키는 이 다리는 단순한 교량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장소이며, 수십 년을 두고 만들어진 오사카의 도시미학이 응축된 공간이다.
오에바시는 1909년 처음 목조 교량으로 건설되었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와 도시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오사카는 그 중심에 있었다. 도시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었고, 이를 감당하기 위한 도심부 교통망 정비가 필수적이었다. 도사보리강은 수로로서도 중요한 위치였지만, 양안을 연결하는 다리의 수는 부족했고, 그 기능도 낡아 있었다. 오에바시는 바로 이 시점에서 계획되었으며, 이후 1927년에는 현재의 석조 아치형 구조로 재건되었다. 일본 정부와 오사카 시는 이 시기 ’시정개량운동(市政改良運動)’의 일환으로 도시의 기반시설을 단순한 기능 중심이 아닌, 미관과 상징성을 고려한 공간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오에바시는 그 대표 사례 중 하나였다.
도사보리강은 오사카를 ‘물의 도시’로 만든 수계망의 중심축이다. 나카노시마를 따라 흐르며, 북쪽의 도지마강과 남쪽의 도톤보리강으로 연결되는 이 수로는, 에도 시대부터 상업, 금융, 문화가 집중된 오사카의 심장부였다. 강을 따라 오사카 시청, 일본은행, 시립중앙공회당 등 근대기 핵심 기관들이 자리잡고, 수상교통과 상권이 맞물려 도시 전반을 관통하는 흐름을 형성했다. 오에바시는 그 흐름 위에 세워진 다리다. 기능적 측면에서는 요도야바시와 히고바시 사이를 연결하며, 도시 동서축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조물이며, 동시에 공간적으로는 오사카라는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입체적 장치다.
건축적으로도 오에바시는 주목할 가치가 크다. 현재의 다리는 세 개의 아치로 구성된 석조 콘크리트 교량이며, 아치 상부에는 세련된 곡선형 난간과 대형 석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 석등과 난간 장식은 유럽 근대도시의 교량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며, 일본이 도시 인프라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전환기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단순히 튼튼한 다리를 짓는 것을 넘어, 도시의 미관과 상징성까지 고려한 이러한 설계는 당시 오사카가 지향하던 ‘근대 도시’의 표상이자 선언과도 같았다. 이 구조물은 2000년대 이후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며, 다시금 그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오에바시의 현재는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1960년대 고도경제성장기에 건설된 한신고속도로가 도사보리강 위를 덮으며, 다리는 음영 아래에 가려졌다. 지금도 다리 위를 걷다 보면 하늘보다는 고가도로의 하부 구조물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강을 따라 바라보는 경관은 회색 콘크리트로 분절된다. 과거 오사카가 자랑하던 ‘도시 미학의 상징’은 자동차 중심 도시계획에 밀려 변두리로 밀려난 셈이다. 그러나 이 겹침이야말로 오사카라는 도시의 시간성 자체를 보여주는 풍경이기도 하다. 근대화의 상징과 고도성장의 유산이 하나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장소는 흔치 않다. 이 다리 위에 서면, 도시가 지나온 길과 남겨놓은 그림자를 동시에 목격할 수 있다.
오에바시라는 이름 역시 단순하지 않다. ‘오에(大江)’는 ‘큰 강’ 혹은 ‘큰 물줄기’를 의미하는 말로, 고대부터 일본과 중국에서 널리 쓰이던 지리적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오에’라는 성씨나 지역명이 수로와 관련된 공간에서 자주 등장하며, 물과 연결된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 다리 역시 도사보리강이라는 도시 수계의 핵심 축 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이름과 지리적 상징이 잘 맞물려 있다. 다리 하나에 도시의 물길과 그 흐름을 따라 형성된 문명적 축이 담겨 있다고 본다면, 오에바시는 단지 통행로가 아니라 도시의 구조를 형상화한 상징이기도 하다.
다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 구조물이 단순한 도로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은 더 명확해진다. 동쪽으로는 일본은행 오사카지점, 서쪽으로는 미도스지와 나카노시마를 따라 이어지는 중앙공회당, 오사카시청, 기타하마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 공간은 모두 일본 근대화 이후 행정·금융·문화 기능이 밀집한 도시 코어(core)로서, 오사카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집약된 장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공간을 시각적·공간적으로 관통하는 선상에 놓인 것이 바로 오에바시다.
오늘날 오에바시를 건너는 사람들 중 이 다리의 역사를 의식하는 이는 많지 않다. 대개는 스마트폰을 보며 무심히 걷고, 고개를 들어 다리 난간이나 석등을 바라보는 이도 드물다. 그러나 그런 일상성 속에서도 이 다리는 묵묵히 도시의 시간을 감싸고 있다. 지금도 다리 위를 걷는 발걸음 위에는 수십 년 전, 혹은 백 년 전 오사카 시민들의 흔적이 겹쳐져 있다. 기억은 형태를 바꾸며 남고, 도시의 풍경은 축적된다. 오에바시는 그 축적의 단면을 보여주는 구조물이다. 작고 조용하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방식으로 도시의 기억을 이어가는 다리. 그것이 오에바시가 오늘도 서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