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サンショウウオの四十九日』-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サンショウウオの四十九日』는 2024년 상반기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으로, 의사 출신 작가 아사히나 아키의 존재론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중편소설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도롱뇽’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생물학적 특성과 인간 존재의 경계를 교차시키며 독자를 철학적 사유로 이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추상적 이론이나 과학적 메타포가 아니라, 감각적인 서술과 구체적인 신체의 이미지, 그리고 독특한 인물 설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결합쌍둥이 자매라는 설정은 자극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사히나는 이를 외피로 삼기보다 조용한 언어로 정제된 내면의 독백으로 전환시킨다.
작품은 태어날 때부터 상반신이 결합된 쌍둥이 자매, 안(杏)과 슌(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같은 몸을 공유하지만 분명한 개별적 의식을 지닌 존재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두 자매의 시점을 각각 ‘私(わたくし)’와 ‘わたし’라는 일본어의 표현 차이를 통해 분리하여 서술한다. 이는 단순히 시점을 나누는 장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같은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같은 장기로 음식을 소화하지만, 마음은 다르게 반응하고, 생각은 제각각이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언어의 층위에서 구현한 점은 작가가 의사로서 인간의 신체를 깊이 이해하고 있음과 동시에, 문학적 표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특히 장면마다 등장하는 감각의 충돌은 두 자매가 한 몸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체화시킨다. 같은 옷을 입지만 다르게 느끼고,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전혀 다른 외로움을 경험한다. 이처럼 아사히나는 육체의 공유라는 설정을 통해 자아란 무엇이며, 의식의 ‘경계’는 어디서 형성되는지를 끝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또한 이 소설의 특이점 중 하나는 자매의 아버지가 과거 ‘태아 내 태아(fetus in fetu)’ 상태로 태어났다는 설정이다.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 안에 들어 있는 드문 의학적 사례는, 이 작품의 존재론적 질문을 더욱 심화시킨다. 실제로 작품 속 아버지는 도롱뇽처럼 꼬리를 지닌 채 태어났고, 이로 인해 생의 초기에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다시 결합쌍둥이로 태어났다는 아이러니는 생명의 탄생과 인간의 기원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도롱뇽의 사십구재라는 제목은 그런 존재들이 떠난 뒤 남은 이들이 치르는 의례를 뜻함과 동시에, 태생적으로 고립되거나 사회로부터 분리된 존재들에 대한 마지막 경의처럼 다가온다. 마치 도롱뇽이 물과 육지를 모두 거닐지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 듯, 안과 슌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와도 같은 삶을 살 수 없다. 이 작품이 전하는 ‘고립의 감정’은 이처럼 신체적 특이성과 감정적 고요함이 겹쳐지며, 독자에게 묘한 울림을 남긴다.
이야기의 전개는 명백한 사건이나 갈등 구조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흐르듯 이어지는 의식의 독백, 감각의 단상, 미세한 감정의 파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음, 장례, 유전, 상실, 그리고 자매 간의 끈끈한 애증이 줄기를 이루지만, 정작 어떤 서사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적 추진력은 부재하다. 그러나 그것이 이 작품의 단점이 되지는 않는다. 아사히나 아키는 명확한 서사 구조를 따라가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인간 의식이란 얼마나 산란하고 복합적인지를 더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특히 자매 중 한 명이 먼저 사망한 뒤, 남겨진 자매의 의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묘사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외부의 사건’으로만 받아들이던 익숙한 감각에서 벗어나,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실감나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살아남은 자매는 혼자일 수 없고, 혼자서도 살아야 하며, 동시에 자신이 여전히 두 명의 존재인지 하나의 존재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는 죽음과 존재, 삶과 의식이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상기시킨다.
문체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극도로 압축된 서술과 문장 내 반복을 통해 리듬감을 조성한다. 마치 맥박처럼 일정하게 이어지는 문장은 독자에게 자장가 같은 안정감을 주면서도,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숨겨진 의학적, 철학적 상징이 서서히 의식을 두드린다. 아사히나의 문체는 절제와 농축, 관찰과 감정을 동시에 안고 있으며, 묘사 하나하나가 해부학적이면서도 정서적이다. 의학적 배경을 지닌 작가가 쓸 수 있는 언어의 정확성과, 인간의 내면을 서사로 번역할 줄 아는 문학성의 결합이 이 작품의 문장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고, 긴 설명은 없지만 결코 공허하지 않다. 읽다 보면 독자는 마치 병리학 실험대 위에 놓인 인간의 내면을 차분히 해부하는 감각마저 얻게 된다.
『サンショウウオの四十九日』는 인간 존재의 경계를 다룬 작품이지만, 단지 철학적인 명제에 머물지 않는다. 삶과 죽음, 고립과 연대, 언어와 침묵이 서로 교차하는 이 소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이며, 내 몸은 어디서 끝나고 내 의식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누군가와 깊게 연결되었을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지는가, 아니면 더 아프게 부서지는가. 결합쌍둥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은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간과하고 있는 정체성과 관계성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물속과 땅 위를 오가며 살아가는 도롱뇽처럼, 현실과 비현실, 육체와 감정, 생과 사의 경계를 조용히 헤엄치는 문학적 생명체다.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 자기 자신이라는 신체와 그 안에 거주하는 ‘자아’라는 의식을 다시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