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 옆을 함께 걷는 사람

보이지 않는 성장을 믿는다

by 예슬하다

변화 없는 날들이 계속될 때가 있다.


수업을 하고, 기다리고, 다시 말 걸고, 반응을 기다리고, 또 그 자리에 서 있는 일. 하루 이틀 지나면 달라질 줄 알았던 표정도, 말도, 행동도 그대로인 날이 계속되면 문득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잘하고 있는 건가,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말과 행동이 의미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그럴 때면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늘도 수업실 앞에 서서 '선생님, 오늘은요?'하고 묻는 그 눈빛. 때로는 지쳐 있고, 때로는 조심스럽고, 때로는 기대와 실망이 함께 담겨 있다.


나도 알고 있다. 이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말하길 바라고, 조금이라도 빨리 달라지길 바라는 그 마음을.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때로는 사소한 눈맞춤 하나에도 몇 달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1년을 다녀도 처음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럴 때 부모님이 먼저 지치고, 스스로 포기하게 되고, 결국 “그만둘게요”라고 말할 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은 말리고 싶다. 조금만 더 해보면, 이 아이 분명 달라질 것 같다고.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 무언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고.








아이를 변화시키는 건 기적이 아니라, 조용한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말, 똑같은 놀이, 똑같은 칭찬을 지루할 정도로 반복하면서 아주 미세한 변화를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오래 아이 곁에 있는 사람이 결국 가장 많은 변화를 보게 된다. 교사는 그 기다림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아이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바뀔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나는 매일 아이를 기다린다. 느리고 더딘 발걸음을 따라 걷는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닿을 거라는 믿음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교구를 꺼내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날에도, 나는 아이가 오는 문 쪽을 바라본다. 오늘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기대를 품고서.


느린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실에는 성과보다 시간이 흐른다. 보이는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축적이 많다.


그래서 이 교실에는 늘 조용한 희망이 있다.


속도가 느린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무겁고 외롭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기다림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교실 한가운데 앉아 조용히 마음을 건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아이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일. 포기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일.




KakaoTalk_20250617_152719887.jpg 다음 수업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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