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제는 장난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업이 끝났다는 말에 금세 반응한다.
“엄마한테 갈까?”라고 물으면,
‘엄마’라는 말에 달려 나가는 아이들도 있고,
그저 안내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따라 나서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때면 이상하게도 섭섭한 마음이 스치곤 한다.
정말 집에 가고 싶었나보다,
얼른 수업을 끝내고 싶었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그만큼 수업에 집중했다는 뜻이겠지,
마음속으로 그렇게 정리한다.
그런데 나는,
수업이 끝났는데도 교실을 떠나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
참 이상하게도 더 뿌듯하다.
물론 아이는 그저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서 못 나가는 것일 테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오늘 내가 준비한 이 장난감, 제대로 취향 저격했구나.’
‘오늘의 강화제, 정말 강력했네.’
아이들이 강화제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날은 표정이 없다.
그저 “받았으니 만져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걸 만났을 때는 눈빛이 다르다.
똘망똘망한 눈, 집중하는 손끝,
‘내가 이걸 열심히 가지고 놀겠다’는 열정이 분명히 보인다.
그 순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치료사인 내게 그건 강력한 무기다.
아이들이 나에게 집중하게 만들고,
지시를 따르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 강화제는 장난감일 수도 있고,
안아주는 것일 수도 있고,
간지럽혀주는 감각일 수도 있다.
혹은 “잘했어” 하고 쓰다듬어 주는 칭찬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특별한 경우가 있다.
바로 ‘사람’ 자체가 강화제가 되는 아이들.
나는 그게 참 귀하고 신기하다고 느낀다.
다른 지점에서 수업 중인 한 친구가 있다.
별명은 ‘공룡박사’.
공룡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게 부른다.
이 친구는 내가 가는 날이면 유독 부끄러워하면서 반응한다.
수업 전까지 소리를 지르거나 종이를 구기던 아이가
내가 들어서면 조용해진다.
다가와서는 “왜 왔어요?”라며 슬쩍 관심을 보인다.
그럴 땐 항상 그 아이에게 말한다.
"공룡박사 보러왔지."
그게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그룹활동 중엔 내 뒤에 붙어서 있으려고 하고,
내가 시키는 건 뭐든지 잘 따라준다.
공룡 놀이만 하고 싶은 친구인데도
활동을 계속 하게 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그 아이에겐 강화제가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치료사를 시작하며
‘나’라는 사람 자체가 누군가에게 강화제가 되는 걸
가장 큰 목표로 삼았었다.
장난감이 없어도, 특별한 보상이 없어도
그냥 내가 있어서 열심히 하는 아이가 생긴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목표를 조금씩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 친구 하나만이라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다.
뿌듯하고, 참 감사하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나를 또 한 걸음 나아가게 한다.
앞으로 새로 만날 아이들에게도
그저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서서히 마음을 주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아이들이 교실을 쉽게 떠나지 않을 때,
나는 그 이유가 나였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