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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나도 늙어가느라 힘들어요

by 방구석 관찰자

45~55세는 일반적으로 생애 주기상, 수입이 제일 많을 때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제 용돈을 감당하고, 우리는 회사에서 관리자급으로서 연봉이 제일 많을 때다.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든, 여러 곳을 전전하며 이직했든, 커리어 관리를 잘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회사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가기 십상인 때이기도 하다. 경기가 안 좋으면 정리해고 1순위가 된다. 전통적 가부장 시대에나 가족을 먹여 살릴 가장이라 치켜세우고, 아무 식구도 안 딸린 사원급을 내보내려고 했지, 지금은 앉아서 돈만 축내는 것 같은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잘 솎아낸다. 물론 희망퇴직이나 임금피크제 등의 달콤한 말로 조삼모사 격의 위로금 내지는 임금 동결을 통해 회사는 손에 피 안 묻히고 인원 감축이 가능하다. 능력이 좋아서 임원(요즘은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고들 한다)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어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재계약에 대한 불안감으로 휴가는 자제한다. 내가 휴가 간 사이에 책상이라도 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50대는 가장 고소득이자, 성숙한 사회적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지만, 동시에 신체의 여기저기가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40대부터 만성질환 유병률과 암 발생률이 급격히 높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질병관리청, 만성질환 통계집「2022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

나도 소소한 고질병들이 있어 평소에 복용하는 약들이 있지만, 40대만 해도 한숨 자고 일어나거나 푹 쉬고 나면, 스스로 재생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이 앞자리에 5가 달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알 수 없는 통증들이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툭툭 튀어나오고, 열심히 쉬어도 좀처럼 회복되기 힘들어졌다. 뾰족하게 지칭할 수도 없이 아파서, 우리나라처럼 의료환경이 좋아도 병원까지 가기에는 애매하게 아프다. 자고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의자에 앉고 일어설 때마다,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젊을 때, 선배들이 회사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음식을 지저분하게 자꾸 흘리는 것을 속으로, 혹은 대놓고 많이 욕했는데, 이제는 내가 지저분하게 흘리고 있다. 이상하게 똑같은 젓가락질인데 음식이 다 잡히지 않고 힘없이 허공에서 떨어지며, 온전히 입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턱밑에서 툭 떨어지는 것이다. 가만히 숨만 쉬고 침만 삼켰을 뿐인데 사레들어 헛기침을 해대고, 땀조차 왠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위생에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다. 날씨 영향을 이전보다 많이 받아, 온 관절이 찌뿌둥해지는 걸로 기상청보다 더욱 정확한 비 예보를 할 수 있고, 조금만 움직이면 보기 싫고 듣기 싫게 벌게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는 저질 체력으로 고생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앉아서 1박 2일도 할 수 있다.


60대가 되면, 회사원의 경우 정년퇴직을 맞는다. 사실, 정년퇴직까지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보통 공무원들이 정년퇴직하는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다. 요즘은 은퇴 후 노후 생활에 대한 교육들이 다양해서 예전처럼 정년 퇴직금을 사기당하거나 잘못된 투자로 날리거나 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은퇴 후 노후 생활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전 직장에서 가졌던 자부심이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파트나 건물 경비원, 혹은 가사도우미나 미화원 등의 3D업종으로 재취업을 하기도 한다. 노후 경비가 넉넉한 사람들은 평소 실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진짜 꿈을 실현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기도 하고, 그게 힘든 상황이면 최대한 생활비를 줄이면서 등산이나, 맨손체조, 공원 걷기 등의 돈 안 드는 운동을 즐기며 나름의 활력을 찾으려 애쓴다. 가장 나쁜 예가, 그동안 충분히 일했으니, 이제는 쉬어야겠다, 하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경우다. 집에서 쉬면서 자신 몫의 집안일을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하는 일 없이 보이는 모든 살림에 꼬투리를 잡아 잔소리를 시작하면, 배우자와 틀림없이 사이가 벌어져서 그 유명한 ‘삼식이 세끼’가 되고 부부 중 더 괴로운 사람이 밖으로만 나돌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동안 가정을 위해 헌신했더니,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며 나는 은행 ATM기였네, 호구였네 하고 한탄하면서 가족과의 관계가 나쁜 방향으로 재정립되고 마는 것이다.

인생의 중반기인 50대, 60대에는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봉착하고, 나 자신도 나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진다. 어쨌든 요점은, 나도 늙어간다는 것이다. 노화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히 노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의술의 힘을 빌리거나, 영양제를 집어삼켜도 이전 시대보다 젊어진 외양과는 다르게, 속의 장기는 늙고 썩어 가는 것이다. 동안에 집착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가장 정확한 눈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물어보면 나의 현 위치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본능대로 답한다.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등등 말이다. 마스크로 하관을 가리고 다녔을 코로나 대 유행 시기에나 상호 호혜성을 가지고 대충 올려 쳐서 대우했을 뿐이다. 건강을 자신하던 사람들도 현대인이라면 갖춰야 할 성인병 하나쯤은 다 얻게 되고,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은 몇 알에서 한 움큼에 이른다. 우리도 힘겹게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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