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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자녀의 독립비용

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by 방구석 관찰자

내 친구 I는 내 동기 중에서도 일찍 결혼을 일찍 한 편이다. 23살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에 불같은 사랑에 빠져 아직은 철이 없었던 친구들의 축복을 한 몸에 받았다. 그녀는 아들 형제를 낳았는데, 그녀 나이가 49세였던 작년에 첫째 아들이 사귀던 아가씨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자친구의 존재도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결혼해서 독립할 것을 예상했기에 사회초년생인 아들의 돈에다 부부의 돈을 얼마간 보태서 조그만 아파트 전세라도 얻어줄 생각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퇴근하고 부부에게 폭탄선언처럼 물었다.

“아버지, 제 결혼에 정확히 얼마를 주실 수 있어요?”

당황한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에게 맡겨놓은 돈 찾아가는 듯한 기세의 태도에 많이 놀랐다.

“네가 모은 돈이 얼마냐? 회사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모은 돈이 많지는 않을 테고, 상대 아가씨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니?”

”OO이도 모은 돈이 천만 원 정도예요. 저도 그 정도밖에 없고요. “

”그럼 아가씨 집에서는 얼마나 도와주실 수 있는지 아니? “

”아마, 못 도와주실 거 같아요. 여유 있는 집은 아니거든요. “

”어디에 집을 얻으려고?

“서울 직장 근처 지하철역 앞에 있는 아파트요.”

내 친구와 남편은 복잡한 마음에 확답을 주지 못하고 생각을 좀 해 보겠다고 했다. 아들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기 방에 들어갔다.


I는 여러 가지 점에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아들을 위해 쓴 돈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부모에게 결혼 자금을 요청하는 당당한 아들의 태도가 당황스러웠고, 이제 막 사회에 진출했지만, 모은 돈이 둘이 합해서 2천만 원이 안 된다는 것도, 사돈이 될 집에서 지원이 없다는 것도 골치를 아프게 했다. 만약 사돈댁이 얼마의 돈을 지원한다면, 같은 액수를 어떻게든 장만해서 요즘 세대들의 ‘반반결혼’처럼 구색이 맞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울의 지하철역 앞에 있는 아파트를 편의점 음료수 생각하듯 간단하게 부모에게 사 달라고 하는 아들의 경제관념에 많이 실망했다. 그녀는 아들이 기죽을까 봐 집안 경제 상황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원하는 사교육을 모두 할 수 있게끔 힘들게 뒷바라지한 것을 후회했다. 친구들은 이런 그녀에게 여러 가지 말로 위로했지만, 남자가 집을, 여자가 살림을 준비해 왔던 예전 결혼 형태에서 높아진 집값으로 남녀 반반 갹출하여 결혼하는 형태로 변화하는 전환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결혼 비용에 대한 논란, 자식들의 당당한 금전 요구,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 자신에게도 닥쳐올 논란거리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중년기에 가족 해체와 고립, 경제적 문제, 건강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경험하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증가하고, 이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과 역할 갈등으로 이어진다. 나의 노후 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부양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더하고, 내 노후에 대한 불안이 뿌리째 흔들리며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간병과 부양이 지속되면서 신체적으로 지치고,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와 같은 정신적 건강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번아웃 증후군’이 이 세대가 겪는 고통을 대표하는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심리적 문제들은 중장년층에서 우울증, 무기력감, 심지어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고 사회 시스템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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