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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쉬운 건 끌어안고 사는 것

노부모와 자녀의 수레바퀴에 깔리다

by 방구석 관찰자

우리의 자녀는 부모의 도움 없이 독립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아기 때부터(대근육, 소근육의 발달도 학습처럼 수행해 내는 열혈 엄마들이 있다면) 치열한 경쟁과 과도한 학습 자극에 노출되어 심심할 겨를이 없다. 우리는 아이의 정서적 성장을 위해서도, TV에 나오는 유명한 의사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틈만 나면 ‘그렇구나, 우리 OO이가 그렇게 느꼈구나~’하면서 감정도 읽어줘야 한다. 콧물을 핥아먹는 것은 물론, 마당 흙도 주워 먹고 큰 우리와는 전혀 다른 육아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의 자녀들은 피곤하다. 사회에서 좋은 포지션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대학이 첫 번째요, 취업, 결혼, 육아, 회사 내 승진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보통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에 진출할 수 있으나, 요즘은 대학만 졸업해서는 회사가 원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 없어서 대학원에도 진학한다.(대학이 상아탑의 전당에서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대학을 향해 현장 실무에 바로 투입할 인재를 육성하라는 의미의 점잖은 척 돌려 까는 인터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지만, 다니다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다시 사람들이 선망하는 전문직 자격증에 눈을 돌린다. 자연스럽게 정년도 없고, 짜증 나는 상사의 괴롭힘도 없고, 여러 가지로 라이센스 있는 직업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자격증 시험은 몇 년에 걸친 준비가 필요하다. 어느덧 그럭저럭 중견기업에 취업하고 나면 남녀 할 것 없이 30세는 훌쩍 넘는다. 30세가 훌쩍 넘어 슬슬 마음 편히 연애와 결혼을 준비할 때쯤이면, 40세도 만혼이 아니게 된다. 중간중간, 번아웃도 오고, 이직도 하고, 진로도 변경하고, 아무튼 연애와 결혼에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하다.


자녀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과정 중에 돈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과정이 하나라도 있는가? 만약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참으로 감사한 부모가 아니라, 간신히 대학에만 들여보낸 부모라면 그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학생 시절을 아르바이트로 점철하며, 몸은 몸대로 축나고, 공부는 공부대로 양이 부족해져서 좋은 학점이라는 스펙 하나를 잃는다. 학자금 대출이라도 받는 경우 바로 취업하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나 상환을 미룰 수도 없다. 간신히 대학만 졸업했는데, 취업준비 시장에서 저스펙으로 루저취급을 받는다면, 졸업하고 뒤늦게 스펙 쌓기에 돌입해야 하는데, 학원비가 상상을 초월한다. 학원이라는 사교육 없이 스펙을 이루는 건, 마부작침(磨斧作針-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다)으로 할 수는 있되,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다. 자격증이니, 봉사활동이니, 월등하게 탁월한 자소서 등 모든 스펙을 갖춘 지원자와 동등한 출발을 할 수 없다. 그러다 꿈은 스러지고 적당히 아무 데나 취업해서 생활비 같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바쁘다.


내 자식은 이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부모들은 물심양면 자식들을 지원한다. 당연하다. 아마 속마음은 이럴 것이다.

‘차라리 독립을 늦추더라도 모든 게 준비가 되게끔 도와주고 싶다. 아니, 독립은커녕 부모 옆에 꼭 끼고서 편안하게 전투에 나갈 준비를 마쳤으면 좋겠다. 그런 의도에서, 대학 교수님께 내 자식에 대한 성적도 문의 혹은 항의하고, 회사에서 상사와 트러블이라도 발생하면 내가 대신 전화해서 상황을 원만히 처리하고 싶다. 결혼, 까짓것 안 하면 어떤가, 어차피 뻔히 보이는 힘든 결혼생활로 삼십몇 년을 따로 살던 타인에게 맞추느라 내 아이가 희생하고 속상해하고 사는 꼴은 못 보겠다. 내 노후가 어떻든 일단은 자식부터 살리고 보자.’


언제까지고 자식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차라리 그들에겐 윈윈(win-win)이다. 집 밖은 위험하니까 자식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세상은 우리 때와 너무 많이 달라졌고, 부모도 자식의 독립을 재촉하기 미안한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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