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왜 직업수집가가 되었는가?(1)

by 방구석 관찰자

나는 공립고등학교 교사였다.

일반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교직 이수를 한 뒤, 논술이 처음 도입된 임용고시에서 위풍당당하게 한 번에 붙었다. 게다가 난 7살에 학교를 조기 진학한 사람으로서, 내가 처음 교단에 선 건 23살이었고, 내가 가르친 첫 학생들은 고 3, 18살이었다. 불과 5살 아래인 동생들을 제자로 대하며, 그들의 학업과 인성을 지도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일이었다. 당시에도 뭔가가 어색하고 내게 그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신규교사치고는 여유 넘치고 유능하다는 평판을 들었으며, 학생들에게는 객관적으로 인기 만점의 교사였다. 스승의 날, 나를 향한 감사와 사랑의 현수막이 학교 건물 5층에서 1층까지 세로로 걸려있거나, 운동장에서 단체로 나만을 위한 댄스를 공연하는 등의 일은 다반사였다. 나는 업무적으로도 승승장구해서, 표창장도 받고, 해외로 연수도 다녀왔다.


학생들에게 ‘학창 시절 동안 내 유일한 스승은 당신입니다.’, ‘선생님, 제 결혼식에 주례를 서주세요.’ 등의 헌사를 받던 나는, 21년 후, 그러니까 내 나이 44살 되던 해의 2월에 교사를 그만두었다.

가정을 이루고 내 아이들을 양육하며, 직업인으로서 어려운 시기는 대충 지나간, 앞으로는 좋을 일만 남은 시기였다. 이미 익숙하지 않은 일은 없었고, 대충 여유롭게 시간을 때우기만 하면, 점점 더 많은 월급이 나올 게 확실했다. 그런데 나는 그 철밥통을 걷어찼을 뿐 아니라, 완전히 구겨버렸고, 바닥에 던져, 발로 짓이기고서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사회인이 되어서 무려 21년을 종사한 일을 이토록 증오하게 된 것은, 간단하게 풀어낼 수 없는 여러 원인이 있었다. 그 내용은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서술하겠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극심한 논란을 불러올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몇년 전 브런치 플랫폼에서 이 크리티컬한 이야기의 극히 일부분을 서술한 적이 있다. 그 때 달린 댓글들의 전쟁을 보고, 심히 착잡했다. 나만의 성급한 일반화였나, 아님, 애꾸눈 세상에서 두 눈 달린 사람이 돌연변이였나, 고뇌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결국, 나는 브런치에 게재된 모든 글을 삭제했고, 브런치를 탈퇴했다. 다시는, 내 생각을 불특정 다수에게 표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는 내 생각에 반대하는 이들을 참아낼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나는 4개의 학교를 거쳤고, 수많은 경험을 했으며, 동료들과 충분히 객관화의 논의를 거쳤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이 없었다, 너만 이상한 상황에 놓였거나, 네 생각이 이상하다며 반문하는 이들을 도무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두 눈을 흐리게 하고 봤으면, 내가 보았던 끔찍한 현실들을 모른단 말인가.


지금은 호숫가의 물처럼 일렁일 뿐이다. 어깨 한 번 으쓱하고, 그래, 넌 그렇구나, 하고 바로 다른 생각으로 전환할 수 있다. 나이가 주는 연륜이라기보다는 다양한 공격에서 살아남는 내공을 익혔을 뿐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마지막에 배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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