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JE
그렇게 불안정한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던 어느 날,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서로 1주일 정도를 만나지 못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들과 보내야 하는 명절이니까.
나는 그냥 그렇게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연휴 동안 그의 연락은 전보다 훨씬 뜸했다.
늘 그래왔듯 '할머니 댁에 가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애써 넘겼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은 불안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더 진지하게 느껴야 했었다.
그렇게 쉽게 남겨둬서는 안 되는 신호였는데.
연휴가 끝나고, 나는 그와 다시 만나고 싶었다.
오랜만에, 그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과 이미 약속이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라며 웃었지만, 솔직히 서운했다.
늘 내게 가장 먼저 와주던 그였는데.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다음 주에 축구 끝나고는 볼 수 있어?"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축구 대회 끝나면 아마 힘들 것 같아... 바로 집 갈 것 같아."
나는 또 이해하려 했다.
"아... 그래, 두 경기나 하니까 힘들겠지. 알겠어."
혼자서 그렇게 말끝을 흐리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과 놀러 갔다.
나와의 약속을 미룬 채로.
며칠 후, 축구 대회가 열렸다.
나는 친구와 함께 그를 보러 갔다.
거의 한 달 만에 보는 그였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전처럼 내게 달려오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과만 어울렸다.
내 친구의 남자친구는 축구 중에도 내 친구를 보러 와서 다정하게 웃어줬다.
그 모습이 괜히 더 서러웠다.
괜히 나만 바보 같았다.
우리는 축구 대회가 끝날 때까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차가운 거리감만 남았다.
나는 겨우 용기 내어 물었다.
"오늘 데이트할 거야?"
그는 짧게 답했다.
"아니, 친구들이랑 고기 먹으러 가기로 했어. 그냥 집 가."
나는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확실히 느꼈다.
이 관계는 무언가 심각하게 어긋났다는 걸.
'오늘은 얘기해야겠다' 마음을 굳혔다.
힘들어서 바로 집 갈 것 같다고 했으면서,
힘들 텐데 친구들은 만나러 가는 그는
더 이상 나에게서 따뜻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가 같이 보려고 했던 영화도
그날, 친구들이랑 먼저 보고 말았다는 걸 알게 됐다.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이걸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날, 평소 10시면 자던 내가,
새벽 1시가 넘도록 잠에 들지 않으려고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한 번이라도, 그의 진심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차가운 공기, 식어버린 커피, 멍하니 바라본 거리.
내 마음도 그렇게 서서히 얼어붙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라는 걸
아프게, 확실하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