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지나간 자리

16.JE

by JE

2025년 봄, 새 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복도 끝에서 그를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조용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전과는 뭔가 달라 보였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긴 했지만, 아무 말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인사도, 미소도 없이. 그 옆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얼굴, 낯선 표정, 그리고 그가 한때 나를 바라보던 그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익숙한 실루엣, 익숙한 걸음걸이, 하지만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모습. 마음이 찢어지는 것도, 울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상하게 멍했다. '아, 나는 아직도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만 반복해서 들었다.

나는 혼자 복도 끝에 서서, 문득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길을 떠올렸다. 작년엔 그와 나란히 걷던 길인데, 올해는 나 혼자였다. 아니, 나만 아직도 그 길에 머물러 있었고, 그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다가와 “괜찮아?”라고 물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괜찮았는지도 모른다.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그가 남아 있긴 했지만, 예전처럼 아프지 않았으니까. 그냥... 아주 오래된 흉터처럼, 간지럽거나 쓰라리진 않지만, 문득문득 느껴지는 무게.

수업이 끝나고 교실 창가에 기대앉아 밖을 바라봤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웃으며 장난치는 아이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평범한 일상. 난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그가 없는 날들을, 그 없이도 괜찮은 하루들을.

하지만 문득, 문득 아주 가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 한쪽이 쿡 하고 쑤신다. 그리고 곧, 그런 생각도 바람처럼 흩어진다.

그래, 나도 앞으로 나아가야겠지. 어쩌면 이미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완전히 다 잊은 건 아니지만, 더는 그리움에 휘청이진 않으니까.

그리고 그게, 어쩌면 어른이 되어간다는 거겠지. 아주 천천히, 조용히,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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