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따로 움직였다.
별다른 약속은 없었지만,
어쩐지 발걸음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역 근처, 사람들 틈에 섞여 걷다가
나는 그녀를 다시 마주쳤다.
그녀는 잠시 내 쪽을 바라보았고,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녀도 작게 고개를 숙였다.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교환만으로
우리는 같은 전철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전철 안은 조용했다.
나는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봤고,
그녀는 이어폰 한 쪽을 내밀었다.
노래는 잔잔했다.
가사가 또렷하지 않은 멜로디가
우리 사이에 부드럽게 흘렀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처럼 느껴졌다.
오다이바에 도착했을 때,
저녁 공기는 부드러웠고,
서쪽 하늘은 아직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도쿄만 너머로,
하나둘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따로 손을 잡지도,
팔짱을 끼지도 않았다.
그저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거리마다 조명이 깜빡이며 켜지고,
바닷가 쪽에서는
가끔 작은 물보라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라일락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조명 아래서 그 색은 더 옅어졌고,
나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조금 걷다가
멀리 대관람차가 눈에 들어왔다.
네온빛으로 물든 커다란 원이
저녁 하늘을 천천히 돌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쪽을 바라봤고,
그녀도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우리는 대관람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표를 사고,
차례를 기다리고,
칸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바닥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조명이 점점 퍼지고,
도쿄만과 도시의 불빛이
아래로 펼쳐졌다.
나는 창밖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눈이 마주쳤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관람차 창 너머 퍼지는 불빛을 배경으로
조용히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찍은 사진을 확인한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따라 웃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
부드럽게 깔리는 조명 아래,
살짝 웃는 그녀.
그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멀리 도시의 불빛도,
바다의 물결도,
세상의 모든 소음도
모두 흐릿해졌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것은
그녀뿐이었다.
대관람차는 천천히 올라가고,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웃었다.
작고, 조용히.
나는 그 웃음을,
그 밤을,
그 라일락빛 스웨터를,
그리고,
그날 찍은 그 한 장의 사진을,
모두 가슴 깊이 새겼다.
늦은 밤, 돌아오는 길.
전철 안에서 그녀는 고개를 기대듯
조금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등이 닿을까 말까 한 거리를 유지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한마디 말도 없었지만,
나는 알았다.
이날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