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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 조용히 가까워지는 사이

by 빡빈킹

우리는 여전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도,
자리를 뜨는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쉬는 시간,
책을 펼치고 고개를 숙인 채
서로를 향해
짧게 미소를 주고받는 순간이 있었다.

그녀가 가볍게 웃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간질거렸다.
내가 먼저 웃은 건 아니었지만,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도 없었다.
짧은 눈인사였지만,
그 하루를 지탱할 만큼 따뜻한 순간이었다.

가끔 그녀가 먼저
샤프를 빌려달라고,
혹은 책장을 넘기다
조심스럽게 손짓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샤프를 건넸다.

샤프를 건네는 순간,
그녀의 손끝이 살짝 내 손등을 스쳤다.
말은 없었지만,
그 짧은 닿음이
긴 문장보다 오래 남았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나란히 쓰진 못했지만,
서로의 귀퉁이를 스치듯 스쳐 지나가면서
살짝 눈을 맞추었다.

우산 사이로 스며드는 비 냄새와,
젖은 아스팔트 위를 때리는 부드러운 소리.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짧은 거리마저도 아쉬웠다.
마치 둘만 아는 작은 비밀처럼
공기는 조용히 우리를 감쌌다.

시간이 흘렀다.
눈에 띄게 가까워진 건 아니었지만,
마음은 조용히,
조금씩,
서로의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몰랐지만,
우리만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조용히,
아주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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