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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그녀가 내 옆에 앉은 날

by 빡빈킹

그날도 평소처럼
나는 늘 앉던 자리에 가방을 내려두고
책을 펼쳤다.
특별할 것 없는, 조용한 수업 전이었다.

교수의 목소리가 들리고,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를 잡을 무렵,
조용히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처음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늘 누군가가 스쳐 앉았다가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게 익숙한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옷깃 스치는 소리,
가볍게 들리는 숨소리,
종이를 넘기는 손끝의 조용한 기척.

그 모든 게
이상하리만치 맑고
잔잔했다.

다음 날,
그녀는 또 내 옆에 앉았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주도.

말은 없었지만,
나는 점점
그녀의 존재를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 날,
책상 위에 가방을 올리려다
우리 손등이 아주 살짝 닿았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

나는 짧게 고개만 끄덕였다.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말 한마디가
온종일 마음속에 남았다.

그녀가 없는 날엔
그 옆자리가
왠지 낯설고 차가웠다.
그리고 그날은
수업이 더 길게 느껴졌다.

나는 어느샌가
그녀가 말없이 앉아 있어주는 것만으로
내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우리는 그날부터
조용히 서로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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