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지를 썼다.
처음엔 한 문장만 쓰고 접었다.
‘고마웠어.’
그 한 줄이 다였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도무지 접히지 않았다.
다시 펼쳤다.
종이에 손끝이 닿는 순간,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말이 없던 시간,
조용히 웃던 얼굴,
말없이 잡은 팔,
말하지 않았던 사랑.
나는 쓰다가,
또 멈췄다.
썼던 문장을 지우고,
또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종이 위에 쓴 문장보다
쓰지 못한 말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결국,
짧게 한 줄만 남겼다.
‘부디, 잘 지내길.’
공항으로 향하던 전철 안에서
나는 그 편지를 건넸다.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조용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읽어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국 심사 게이트의 불빛이 켜지고,
우리는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졸업식은 이미 끝났다.
집에 들렀다 다시 떠나기 전,
나는 혼자 삿포로에 다녀왔다.
그녀는 모른다.
내가 그곳까지 다녀왔다는 것을.
삿포로의 3월은 아직 겨울이었다.
양들의 언덕엔 눈이 가볍게 쌓여 있었고,
클라크 박사는 여전히 저 멀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발치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손에 든 작은 봉투를 돌 틈 아래 밀어 넣었다.
흰 편지가, 흰 눈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관리소 안내소로 가서 말했다.
“혹시, 누군가 이 편지를 찾으러 오면
날짜만 보고 꺼내달라고 전해주세요.”
관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회색 수첩에 적었다.
‘20XX년 3월 1일 – 무기명 – 편지 1건 보관’
편지 봉투는 기록과 함께
조용히 서랍 안에 들어갔다.
공항에서 건넨 편지,
그녀는 언제 읽었을까.
편지 맨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삿포로의 그 언덕,
그날의 클라크 박사가
지금의 나를 대신해 널 기다릴 거야.”
나는 그 이후로,
그녀와 다시 연락을 하진 않았다.
다만 언젠가,
아주 조용히 들려온 이야기 하나가 있었다.
그녀가 정말로
그 언덕을 찾았고,
날짜를 말하자
안내인이 준비된 듯 편지를 꺼내줬다고.
그녀는 한참 동안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아무 말 없이
그 편지를 펼쳐 읽었다고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