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倭)'라는 가면을 쓴 일본

설계된 함정과 선택적 수용의 부당함

by 목인

1. '왜’는 누구인가 - 이름에 갇힌 설계된 함정


​우리는 보통 ‘왜(倭)’라고 하면 곧바로 일본을 떠올린다. 현대의 한국인에게나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나 ‘왜는 곧 일본’이라는 등식은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또한 자신들의 국가 기원을 서술할 때 고대 사료 속의 ‘왜’를 역사적 실체로 규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그들을 부르는 방식이다. 16세기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일본은 이미 국호를 ‘일본’으로 바꾼 지 800년이 지난 시점이었음에도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왜’라고 칭했다.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천 년 이상의 세월 동안 우리의 시선은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그들을 ‘왜’로 규정해 왔다. 이는 단순한 명칭의 고집이 아니라, 이름을 갈아입어도 변하지 않는 그들의 실체에 대한 우리 역사의 준엄한 기록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불편한 모순이 있으며,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부당함이 존재한다. 일본이 ‘왜’를 자기 역사라고 말할 때, 그 ‘왜’는 역사 속에 실존했던 ‘있는 그대로의 왜’가 아니다. 그것은 8세기 편찬자들에 의해 가공되고, 현대 일본 사학계에 의해 또 한 번 취사선택된 ‘선택적 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유리한 기록은 ‘우리’의 역사로 취하고, 불편한 실체는 ‘남’의 일로 치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설계한 불편한 진실의 입구로 들어가, 그들이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는 ‘진정한 왜’의 민낯을 마주하고자 한다.


2.​제1차 왜곡 - 일본서기가 설계한 시간의 함정

타자의 시선에서 시작된 이름
‘왜’는 처음부터 일본이 스스로 선택한 이름이 아니었다.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서 묘사하는 ‘왜’는 낙랑 남쪽 바다에 흩어져 있는 소국들의 통칭이었다.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당시의 왜는 한반도 남부와 대마도, 규슈 북부지역을 잇는 ‘중간 지대’에 파편화되어 존재하던 세력이었다. 위(魏) 나라에서 열도로 향하던 사신의 시선은 철저히 ‘낙랑의 남쪽 바다’에 고정되어 있었다. 만약 당시 그들의 중심지가 열도 깊숙한 곳에 고립된 형태였다면 이러한 지리적 묘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즉, 본래의 왜는 한반도와 열도 사이에 존재하던 ' 연동형 전략적 복합체'였다.

시간의 가면, ‘신공황후’의 탄생과 히미코 여왕의 삭제
일본은 8세기 일본서기를 편찬하며 이 역동적인 실체를 ‘만세일계’라는 폐쇄적인 성벽 안에 가두기 위해 치명적인 왜곡을 단행했다. 그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히미코(卑彌呼) 여왕과 신공황후(神功皇后)의 강제적 결합이다. 3세기의 히미코(서기 239년, 위나라 책봉)와 4세기 근초고왕의 칠지도(서기 369년) 사이에는 130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강물이 흐르지만, 일본은 이를 ‘신공왕후’라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단 10년의 섭정기 속에 압축해 버렸다.
​이 무리한 조작의 본질은 히미코라는 '역사적 실체'를 지우고, 그 자리에 천황가의 '신화적 정통성'을 심는 데 있다. 3세기 중국 사서가 기록한 히미코는 일본 역사를 신화가 아닌 사실이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외교적 실적으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이지만, 그녀가 천황가의 계보 밖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는 진실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히미코의 행적을 신공황후라는 유령의 외투로 덮어 씌움으로써, 타자의 기록이 보증하는 고대의 권위를 천황가라는 하나의 줄기 속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130년의 실질적인 역사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신화의 함정을 판 것, 이것이 소위 말하는 ‘120년 이주갑인상’의 실체이자 계보를 훔친 명백한 기만이다.

​3. 제2차 왜곡 - 500년의 유령 ‘무내숙녜’와 지워진 진실

수인(11대)에서 응신(15대)까지, 500년을 관통하는 설계자
일본은 무내숙녜라는 인물을 수인부터 응신에 이르기까지 무려 5세대에 걸쳐 천황을 보필한 인물로 기록한다. 기록상 활동 기간은 500년에 달하는데, 이는 일본이 고대사를 구성하면서 얼마나 무리하게 인물을 신화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실체는 무내숙녜라는 이름이 보여주는 '군사·행정 관료로서의 영속성'이다. 그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선진 문명과 강력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열도의 기틀을 닦고 왕권을 설계해 온 거대한 세력의 총체였다. 일본은 이 500년의 주역이 무내숙녜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를 한 인물로 형상화하여 신화의 영역으로 유배시켜 버렸다.

뿌리는 부정하고 열매만 취하는 비겁함
일본은 무내숙녜가 일구어낸 정복의 성과와 국가 기틀의 완성은 ‘천황가의 영광’으로 수용하면서도, 정작 그가 가졌던 실권자로서의 정체성은 철저히 외면한다. 수인 시대부터 시스템을 도입하고, 성무와 중애의 정벌을 기획하며, 최종적으로 응신이라는 신왕조를 탄생시킨 장본인이지만 오늘날 일본의 역사에서 그는 그저 천황의 충직한 그림자일 뿐이다. 주객이 전도된 이 선택적 수용은 부정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은 도려내고 오직 ‘역사적 결과물’만 취하려는 학문적 야만성이다.

4. 현대의 덫 - ‘자기가 보고 싶은 왜’만 골라 담는 기술

광개토대왕비와 취사선택의 모순
일본은 사료 앞에서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광개토대왕비의 ‘왜(倭)’라는 한 글자에는 환호하며 한반도 진출의 훈장이라 주장하지만, 정작 그 비문이 가리키는 실제 모습 - 수백 년간 반도와 열도를 잇고 응신 왕조를 세워낸 무내숙녜 집단의 군사적·정치적 실체 - 는 마주할 용기가 없다. 유리한 기록은 자부심으로 삼고 정체성은 ‘남’의 일로 치부하는 것이 제2차 역사 왜곡의 본질이다.

유령의 이름으로 쓴 허구 : 임나일본부
8세기에나 확정된 ‘일본’이라는 국호를 400년 전의 전장에 소환한 임나일본부는 시대착오적인 사기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이름을 과거 문서에 적어놓고 사실이라 우기는 꼴이다. 이는 일본이 현재의 입맛에 맞게 ‘왜’를 가공하여 수용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들은 ‘왜’를 소유하려 하지만, 그 이름 속에 담긴 진실된 생명력은 두려워하고 있다.


​5. ‘있는 그대로의 왜’를 인정하라 - 진정한 역사 수용의 조건

가공된 신화인가, 정직한 고백인가
역사는 거울과 같다. 일본은 광개토대왕비의 ‘왜’에 환호하면서도 비문이 증언하는 신묘년(서기 391년) 왜의 진실된 모습은 부정한다. 그 실체는 가공된 신공황후의 유령군이 아니라, 수인 시대부터 기틀을 설계하고 마침내 390년 응신(應神)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옹립해 낸 무내숙녜(武內宿禰)로 상징되는 강력한 실체였다. 승전 기록은 '자신들'의 것으로 취하면서 주역인 무내숙녜의 정체성은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가 지속되는 한, 그들의 고대사는 영원히 파산한 유령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시대적 모순 앞에 던지는 최후통첩
일본은 스스로 만든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8세기의 국호를 400년 전 전장에 투영한 비겁한 논리는 1,600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당시 왜의 진실된 민낯을 인정하는 자기 고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왜는 곧 일본’이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유리한 기록만 취하는 태도는 역사를 대하는 학문적 자세가 아니다.

​1,600년의 왜곡을 끝내는 유일한 길
우리는 1,600년 전의 ‘왜’와 현재의 일본이 하나임을 안다. 그러나 그 실체는 가면 속의 신화가 아니다. 히미코ㆍ신공황후ㆍ무내숙녜, 그 속에 담긴 신화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 왜는 곧 일본이고, 일본 역시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말하는 왜와 일본이 인정한 왜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 있다. 일본은 이 차이를 인정하고 더 이상의 억지를 멈추어야 한다. 정직하게 고개를 숙이는 자기 성찰만이 진실된 역사를 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역사의 진실은 결코 설계된 함정 속에 영원히 갇혀 있지 않음을, 일본은 이제 깨달아야 한다.

[ 다음 회차에서는 ' 왜와 여진'을 소재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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