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미스터리 " 29대 0"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왜가 신라를 침입한 횟수가 무려 29회로 나와 있다. 서기 502년 무령왕 즉위 이전까지만 그렇다. 이들은 수천 명의 병력으로 수도 금성을 포위하거나 때로는 해안가 민가를 약탈하며 수백 년간을 괴롭혔다. 반면에 백제와는 같은 기간은 물론 서기 663년 백강전투, 백제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단 한 차례의 전투기록도 없다.
29대 0의 압도적 불균형이다.
백제와 신라는 비록 가운데 소백산맥이 있기는 하나 국경을 마주한 인접 국가이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신라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백제와는 수백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충돌은커녕 만남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다.
왜는 기원전 50년 박혁거세 시기부터 신라를 침입하기 시작했고, 서기 59년 탈해왕 3년에는 사신을 교환하는 등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백제와는 서기 366년에 근초고왕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처음 만나게 된다.
신라를 마치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왜가 바로 옆집 백제와는 400년이 지난 시점에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의문을 더하는 것은 서기 173년 왜의 히미코 여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고, 또 서기 238년에는 대방과 낙랑을 통해 위魏나라로부터 친위왜왕이라는 책봉을 받는다. 이처럼 왜가 국제무대에서 다각화 노력을 하고 있는 도중에도 백제와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왜가 낙랑과 대방으로 가려면 반드시 백제 앞바다를 통과해야 되는데 이때 백제는 이미 한강 유역과 서해를 잇는 강화도 일대와 관미성을 장악하면서 서해 해상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와 백제는 서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무렵 대방과 낙랑은 백제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여러 차례 충돌하고 있었다. 그런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대방, 낙랑으로 가기 위해서, 자기 집 앞마당을 지나가고 있는 왜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아무런 접촉도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서기로 한 번 가보자.
일본서기는 어찌 된 영문인지 6세기 이전까지 신라와 왜의 전투를 단 한차례도 기록하고 있지 않는다. 광개토대왕비문과 삼국사기에 기록하고 있는 그 내용들이 통째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신공왕후라고 하는 가공의 여인이 등장하여 임신한 몸으로 삼한을 정복했다는 신화로 채우고 있다.
이것 또한 무슨 괘이한 일인가? 신라와의 전쟁 기록을 밝히면 안 될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신라와의 전쟁 기록을 모두 있는 그대로 밝히면 삼한 정벌이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런데 더욱 이상한 점은 서기 369년 백제와 함께 가야 7 국을 평정한 기록만은 매우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지난 회차에 얘기했듯이 이 전투는 백제 근초고왕의 설계에 의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토록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신화의 내용대로라면 이미 삼한을 정복했는데 또다시 가야 7국을 평정하다니 이 무슨 이율배반 적인 이야기인가.
왜의 기이한 행동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왜가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해안의 민가를 습격하고 약탈했다고 전하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생존을 위해서 도적질을 작정했다면 당연히 지척에 있는 호남평야도 들어가야 했지만 구태여 신라만 골라서 갔다? 굶어 죽더라도 호남평야는 가지 말아야 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결국 이 400년의 침묵과 불균형은 우연이나 누락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따라서 29대 0이라는 숫자는 백제와 왜의 특수한 관계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로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차원이 다른 어떤 결속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중국 양서에 나와 있는 백제의 22 담로가 더욱 궁금해졌다.
[다음 편에서는 나제동맹의 정말 별난 두 번째 미스터리를 추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