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자딕, 볼테르, Speculum Stultorum, 에코
기호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흔적을 찾아나선 나의 여정은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유럽식 작명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브루넬로라는 이름에 숨겨진 의미를 추적하며, 나는 나름의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에코의 『셜록 홈즈, 기호학자를 만나다』 '뿔, 말발굽, 구두, 발등' 편에서 장미의 이름과 매우 흡사한 '브루넬로'에 관한 추리 서술을 발견했다. 볼테르의 『자딕』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패러디로 생각했다.
그런데 『장미의 이름』을 계속 읽어나가던 중 『스펙쿨룸 스트룰토룸(Speculum Stultorum)』, 즉 '바보들의 거울'이라는 작품이 나왔고, 다시 한번 이번엔 작품의 주인공 ‘당나귀 브루넬로’를 만났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는 촉이 왔다. '3'이라는 기호는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배치할 때 쓰는 숫자다.
직관적으로 이건 에코가 심어놓은 퍼즐일 것이라 가설을 세우며, 추리의 본능이 다시 깨어났다.
볼테르의 『자딕』, 에코의 『장미의 이름』, 그리고 영국 수도사 나이젤 와이레커의 풍자시 『스펙쿨룸 스트룰토룸』. 이 세 작품은 모두 브루넬로를 다루고 있으며, 각각은 에코가 제시하는 기호학의 세 가지 축을 형성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뒤집고, 다시 새로운 가설을 구축한다. 에코는 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당치 않아 보이는 가정이라도
해보아야 하오.
지적 탐구의 본질을 꿰뚫는 이 통찰은 나의 여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검둥이 브루넬로 이후, ‘브루넬로’를 주연, 조연으로 하는 세 작품을 통해 내가 세운 가설은 단순했다. 볼테르의 『자딕』, 에코의 『장미의 이름』, 그리고 『스페쿨룸 스트룰토룸』이라는 세 작품에 등장하는 브루넬로를 삼각축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후에 이 가설은 뒤엎어지겠지만,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실패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발견에 도달하듯, 오류를 통한 지식의 확장은 인문학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오류의 과정 자체가 진실에 이르는 길이라면, 우리는 틀린 가정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 책 ‘기호의 귀환’은 처음 내가 세웠던 브루넬로를 둘러싼 세 가지 축의 가설과 그 진화 과정을 함께 추적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오류의 기록이 아니라, 기호학적 미로를 탐험하는 지적 모험의 지도다.
그렇게 나는 브루넬로라는 작은 기호를 따라 걸었고, 그 여정은 결국 단지 하나의 이름을 넘어서 기호란 무엇인가, 세계는 어떻게 기호로 조직되는가, 기호는 해체된 뒤에도 어떻게 다시 귀환하는가를 묻는 더 긴 탐구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이 책은 그 탐구의 지도다.
1차 가설을 통해 나는 기호의 감옥, 기호의 억압, 기호의 붕괴 삼중 변주를 해석했지만 그 해석이 끝나자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내용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 왔다. 1차 가설은 에코가 제시한 책들 안에서 이루어진 연결이었다면(에코의 우물 안), 그다음 가설은 내가 기존에 읽었던 다른 책들(세상의 바다)이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연결되면서 만들어졌다(connecting dots).
그래서 우리의 무의식이 리듬을 찾아 어떻게 기호화로 연결되는지, 과거로 거슬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꿈꾼 명명의 세계에서 시작해, 중세의 과잉과 붕괴를 지나, 언어 이전의 감각과 무의식의 리듬을 통과하여, 마침내 별과 수, 하늘의 기호까지 읽어내려는 인간의 최초의 시도까지 모든 것을 연결하게 되었다.
일단 첫 번째 가설, 세 가지 축—볼테르의 『자딕』, 『장미의 이름』, 그리고 『스펙쿨룸 스트룰토룸』—을 먼저 살펴보고, 그 뒤 본격적으로 기호의 귀환을 다루는 더 깊은 여정을 떠나려 한다. 기호의 시원을 찾아가는 이 지적 모험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표지 책 커버 출처: 아마존,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