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 와인에서 기호학으로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폭삭 속았수다, 체사레 보르지아

by 사유의 풍경

3.7 에코의 귀추법으로 해석하는

『장미의 이름』


이제 에코의 4단계 귀추법을 통해 "브루넬로" 추리와 소설 전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살펴보자.


1. 과잉 부호화된 귀추법: 자동적 해석


윌리엄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흔적들을 자동적으로 해석했다. 부러진 나뭇가지, 말털, 발자국 등은 자연스럽게 '말이 지나갔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는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단계다.


소설 전체에서 과잉 부호화된 귀추는 중세 기독교 세계관 속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해석들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수도원 사람들이 첫 살인 사건을 '묵시록의 예언이 현실화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중세 문화 속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해석이다.


2. 과소 부호화된 귀추법: 여러 가능성 중 선택


윌리엄은 발자국의 깊이, 털의 색깔 등 여러 흔적을 종합해 말의 특성(키가 작고 잘 달리며 검은색)을 추론했다. 그리고 여러 가능한 이름 중에서 '브루넬로'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소설에서는 살인 사건의 동기에 대한 여러 가설들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것을 선택하는 과정이 이에 해당한다. 윌리엄은 처음에는 묵시록의 7개 나팔을 따르는 살인 패턴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다른 가설을 세운다.


3. 창조적 귀추법: 새로운 규칙 창조


여기서 한국의 독자에게는 창조적 귀추가 요구된다. 창조적 귀추는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말들보다 현저히 어두운 색의 말을 '브루넬로'(작은 검둥이)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와인 이름과 색상의 관계, 중세 유럽의 이름 문화에 대한 지식을 종합해 만든 새로운 해석 규칙이다.


소설에서는 윌리엄이 살인 사건들이 도서관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장면이 이에 해당한다. 그는 기존의 해석 틀(묵시록)을 버리고, 도서관의 물리적 배치와 분류 체계라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4. 메타 귀추법: 해석의 틀 선택


메타 귀추법은 '브루넬로 추리가 소설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라는 해석의 프레임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추리 내용이 아니라, 추리 방식 자체가 소설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깨달음이다.


소설에서 윌리엄은 마지막에 모든 살인이 체계적인 계획이 아니라 우연의 일치였음을 발견하며 자신의 해석 틀 자체를 회의한다. 그는 "내가 만든 질서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고백한다. 이는 해석 자체에 대한 메타적 성찰이다.


결국 윌리엄이 말이 남긴 흔적(기호)만 보고 ‘브루넬로’라는 이름을 찾아낸 것처럼, 나는 에코의 ‘브루넬로 추리’라는 ‘기호’만 보고, 『장미의 이름』 전체의 주제를 찾아냈다. 에코의 4단계 귀추법의 정확한 적용이다.


4. 나의 여정

와인에서 기호학으로


내가 브루넬로 추리의 의미를 밝혀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에코의 귀추법을 실천한 여정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탈리아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DM)'에 대한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는 과잉 부호화된 귀추법으로, 브루넬로라는 이름과 포도의 짙은 색 사이의 연관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한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여러 가능성 중에서 '브루넬로는 다른 것보다 더 어둡고 짙은 색을 가진 대상을 지칭한다'는 가설을 선택했다. 이는 과소 부호화된 귀추법이다.


그런 다음 와인 명명법, 중세 유럽의 이름 문화, 색에 기반한 동물 이름 짓기 방식 등을 종합해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검은 말을 브루넬로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창조했다. 이는 창조적 귀추법의 단계다.


마지막으로, '브루넬로 추리'가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소설 전체의 기호학적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열쇠라는 해석 프레임을 선택했다. 이는 메타 귀추법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것은 『장미의 이름』 해체를 위한 ‘서곡’에 불과하다. 에코형이 원한 건 이게 아니지. 에코형은 여러 곳에 다른 힌트를 뿌리며 좀 더 자신을 쫓아와 보라고 한다.


“아직 끝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쉽게 잡힐 줄 알았니?”


“에코형 좀 만 기다려. 내가 완전하게 형[횽]의 작품을 횽의 ‘창조적 귀추법’과 나의 ‘범추법’을 합친 ‘메타 울트라 콤보 슈퍼 필살기’로 철저하게 해체해 줄게!"

야 너 뭐 돼?
응, 나 뭐 돼~ 이름에도 뭐 있어
이 이미지는 장하(章廈)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AI 도구를 사용하여 생성되었습니다. CC BY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To be continued.



참고: 서자 체사레 보르지아

1.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성 '보르지아(Borgia)'를 쓸 수 있었던 이유

바티칸을 떠나는 체사레(1877) Giuseppe Lorenzo Gatteri, 신사의 초상화(1513, 체사레로 추정됨) Altobello Melone, 출처: wikimed

1493년 9월 20일,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자신의 둘째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를 공식적으로 교회법상 성직에 적합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두 개의 상반된 칙서를 동시에 발행했다.


하나는 공개 칙서(bulla publica)로, 체사레를 그의 어머니 바노차 데이 카타네이(Vannozza dei Cattanei)와 그녀의 첫 남편 도메니코 다 리냐노(Domenico da Rignano)의 아들로 명시함으로써 ‘합법적 혈통’을 가장하여 성직 수품에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목적이었다. 이 조치는 교회법상 서자의 성직 수품 금지 조항을 피하기 위한 법적 조작이었다(Sarah Bradford, 1976).


그러나 같은 날 발행된 비밀 칙서(bulla secreta)에서는 체사레를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자신의 친자(親子)로 명시하며, 그가 실질적으로 보르지아 가문의 일원임을 공식 선언했다. 이 비밀문서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체사레가 공공연히 ‘보르지아’ 성을 사용하고, 추기경·공작 등 고위직에 임명된 정치적 정황을 통해 실질적으로 유효한 문서로 기능했다. 이러한 이중 문서 전략은 당시 교황의 절대권과 정치적 목적, 그리고 교회법의 외면과 이용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Alois Uhl, 1993).


해당 비밀칙서는 바티칸 사문도서관(Vatican Apostolic Archive)에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2차 저작들에서 비밀칙서를 언급하고 있고, 당시에는 사실상 공개적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허가를 받아야 열람가능하다. 사문도서관은 원래 비밀도서관(Archivum Secretum Vaticanum)이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에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Secret’ 대신 ‘Apostolic’ 사용하여 개명했다.


2. 마키아벨리 · 다 빈치 · 체사레:

르네상스의 정치적 삼각 구조

나는 그의 몰락에 대하여
운명보다 더 큰 책임이
그 자신에게 있었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는 많은 유능함을 지녔으며,
내가 말한 모든 자질을 겸비하고 있었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제7장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체사레 보르지아 공의
총괄 건축·기술 고문이노라
Ego Leonardo Vinci,
architectus et ingenarius generalis illustrissimi
domini Cæsaris Borgiae…

- 레오나르도 다 빈치, 1502년 군사 고문 계약 기록


르네상스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는 1502년, 이탈리아 중부의 로마냐 지방에서 펼쳐졌다. 그곳에는 세 명의 인물이 모여 있었다. 교황의 아들이자 냉혹한 군주 체사레 보르지아, 피렌체에서 파견된 젊은 외교관 니콜로 마키아벨리, 그리고 기하와 해부도를 품은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체사레는 정복과 통합의 야망을 품고 각 도시국가를 정리해 나가고 있었고, 마키아벨리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며 사유하고 기록했다. 다 빈치는 그의 명에 따라 요새를 설계하고 지도를 제작하며, 르네상스의 과학적 감각을 전장에 투입했다. 이들은 단순한 동시대인이 아니었다. 정치(마키아벨리), 기술(다 빈치), 권력(체사레) — 이 세 축이 만나 르네상스는 사유의 시대에서 실천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체사레는 오래 살지 못했다. 아버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죽음과 함께, 그가 쌓아 올린 권력의 기반은 붕괴되었고, 병과 암살, 배신이 그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은 말한다.

만약 체사레가 살아 있었다면,

이탈리아는 통일되어
다시 한번 로마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체사레는 단순한 폭군이 아니었다. 그는 직접 행정 조직을 설계하고, 군사적 정복 이후 지방 관료제를 통해 통치체제를 정비한 ‘근대 국가의 초안’을 현실에서 시험한 군주였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그를 “운명의 문턱까지 도달한 인물”이라 평가했고, 다 빈치는 그와 함께 전략과 예술, 기술과 권력이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실현하고 있었다.


체사레의 죽음은 하나의 인간의 죽음이었지만, 동시에 하나의 가능성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 근대 이탈리아가 탄생할 수도 있었던 문이, 조용히 닫힌 것이다.


3. TV드라마 보르지아


체사레를 motive로 한 미국 드라마와 유럽 드라마가 있는데, 미국 드라마(The Borgias)에 비해 유럽판(Borgia,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공동 제작)이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훨씬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고 정치적 음모, 종교 개혁 등의 복잡 다단한 르네상스 배경을 잘 그렸으며 연기자들의 연기도 탁월하다. 이 드라마 하나로 당시 유럽과 이탈리아의 배경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다(물론 아무런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진입 장벽이 있을 수 있다).


그에 비해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미국판은 지나치게 가문의 부패와 권력 투쟁을 중심으로 단순한 전개와 자극적인 서사에 집중되고 역사 왜곡이 심하며 연기도 별로다. 유럽판은 다시 보고 싶은 손꼽히는 명작이지만, 미국판은 몇 개를 보다가 그만두었다. 물론 이건 내 기준이라 재미의 기준이 다르면 달리 볼 수 있다.

유럽판(좌, 우), 미국판(가운데), 출처: imdb
Borgia Trailer

참고문헌

군주론, 제4판 개역본,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김경희 옮김, 까치, 2015

내면소통, 김주환, (주)인플루엔셜, 2023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나다-논리와 추리의 기호학, 움베르트 에코•토마스 A. 세벅 엮음, 김주환•한은경 옮김, 이마, 2016

움베르트 에코, 김운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일반 기호학 이론, 움베르토 에코,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9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특별합본판 2022

재산의 풍경, 근대영국소설의 배경과 맥락, 윤혜준, 한국문화사, 2020

해석의 한계, 움베르토 에코, 김광현 옮김, 열린책들, 2009

박준호(2005), 퍼스의 귀추와 가설의 방법, 범한철학 제37집

신진욱(2008), 구조해석학과 의미구조의 재구성, 한국사회학 42(2), 한국사회학회

PRIYAMVADA NATARAJAN, Mapping the heaven, THE RADICAL SCIENTIFIC IDEAS THAT REVEAL THE COSMOS, Yale UNIVERSITY PRESS, 2016

The Name of the Rose, Umberto Eco, First Mariner Books edition HarperCollins. Kindle Edition. 2014

Bradford, Sarah. Cesare Borgia: His Life and Times. London: Weidenfeld and Nicolson, 1976

Uhl, Alois. Papstkinder: Lebensbilder aus der Zeit der Renaissance. Wien: Amalthea,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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