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검사
결혼 전에는 사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지금은 유모차만 지나가도 애기 얼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지만). 그런데 왜 그랬는지 결혼을 하면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바람대로 3달 만에 첫 째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아이가 안 생기면 어쩌나..' 잠깐 고민도 했던 터라 안도감도 들었다.
그렇게 신혼을 누릴 새도 없이 '임산부'가 되어 산모수첩에 뱃속 아이의 흑백 사진들을 채워가던 중 어느 날이었다.
병원에서 별별검사들을 하고 정기 검진일에 결과를 들으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다운 증후군 수치가 높게 나왔으니 양수검사를 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뭔가 분위기가 안 좋게 돌아간다는 걸 알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양수 검사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복부에 주삿바늘을 꽂아 양수를 채취하게 됩니다."
"그런데.. 검사를 해서 만약에 염색체 이상으로 확인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저희 병원에서는 수술(임신중절)은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확인만 하는 차원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당시 33살의 초산 임산부였기에 아마도 고위험군에 속했던 모양이다.
첫째라 이때만 해도 신랑이 꼬박꼬박 같이 병원을 가주던 때라 신랑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정말 날벼락같은 통보에 초보 엄빠는 갈길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만약에 검사를 해서 결과가 안 좋게 나온 들. 어쩌겠느냔 말이다.
결론은 '낳는다'였다.
그리고 이렇든 저렇든 낳을 건데 굳이 검사를 할 이유가 없기에 우리는 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에도 출산까지 수많은 검사의 과정 속에서 혹시나 하는 1% 가능성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날의 결정 이후 웬일인지 마음은 편해졌다.
그렇게 큰 반전 없이 만나게 된 첫째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첫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말에도 반전 없이 아빠 판박이다. 그런데 또 성격은 나를 닮아 요즘 첫째를 보면서 거울치료를 받는 중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너무 욕심 많고, 바라는 것 많고, 잔소리 많은 엄마가 되어버렸다. 첫 째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특히나 나에게 있는 '단점'들이, 내가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첫째에게 보일 때면 너무 화가 나고, 복잡하고, 조급한 마음이 올라와서 견딜 수가 없다.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내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 또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미안하지만 왜 유독 첫째에게는 바라는 게 많은 것인지.. 하필, 첫째의 친구들은 막내들이 많아서 유독 더 비교가 된다. 그 친구들은 자기 집에서 막둥이로 아직도 우쭈쭈쭈 귀염둥이 취급을 받는데 우리 집 첫째는 5살 막둥이에 한참을 밀려 다 큰애 취급을 받는다.
머리로는 아직 어린 아이다! 생각하지만 왜 마음이 안 따라올까?
어쩌면 나의 내면을 꼭 닮은 이 아이를 보며, 내가 살아왔던 치열했던 과정들을 너도 겪게 될 까봐 두려움이 앞서는 것 같다. 마치 이 아이를 품었을 때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며 가슴 졸였던 그날의 기억처럼 말이다.
두 살 터울의 둘째를 낳기 한 달 전. 첫째를 어린이 집에 보냈다.
마음 같아선 더 데리고 있고 싶었지만 상황에 밀려 보내게 되었다.
한 순간도 안 떨어지고 붙어 있던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겨 두고 나오는 엄마의 심정은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한다. 적응기간이 끝나고 잘 다니는가 싶었다가 또 슬럼프가 찾아와 등원거부를 하던 어느 날. 마음이 너무 안 좋고, 이렇게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계속 보내는 게 맞나 힘들어하던 나에게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어머니, 시온이 믿어 주세요~ 잘할 거예요^^"
어쩌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이 말인 거 같다.
엄마의 불안함이 아니라, 엄마의 믿음이 아이를 자라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