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력

by 빛의골방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을 고르라면 단연코 체육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힘들어했던 종목을 고르라면 '달리기'다. 그것도 오래 달리기.





결혼 전에도 직장생활을 했지만, 휴일이나 쉬는 날에는 온전히 내 의지대로 시간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책 보고 싶으면 책 보고, 친구 만나고 싶으면 친구 만나고가 가능했는데 '엄마'가 되는 순간 이 모든 주도권이 사라졌다.


아마도 내가 누려왔던 내 의지로 살던 삶을 내려놓는 것이 엄마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자기 부인의 삶과 동시에 또 따라오는 것이 '지구력'싸움이다.


엄마가 됨과 동시에 부여되는 수만 가지의 노동을 매일매일 처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먹이기

씻기기

놀아주기

숙제 봐주기

빨래

청소

설거지

등.


적고 보니 별거 없는데? 하겠지만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각 항목별로 세부적인 가지가 얼마나 많이 뻗어 있는지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는지도ㅠㅠ

다둥이네는 한 아이가 아프면 아픈 아이 때문에 걱정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줄줄이 사탕처럼 다른 아이들까지 아프게 될 것을 알기에 더 긴장하게 된다. 작년 겨울에도 첫째의 폐렴을 시작으로 겨울맞이를 시작해서 독감 퍼레이드로 약 두 달간 처방전만 몇 장을 받아 왔는지 모른다. 독감은 또 시간 맞춰 약을 먹여야 하니 둘 이상 되면 약 타고 열재느라 하루가 다 간다.

(그 와중에 집에 잘 있지도 않은 아빠는 왜 꼭 그렇게 감기가 옮는 것인지!!)

온 가족 병시중을 들다 보면 늘 마지막차례는 엄마다.

이제 다 나았다 하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면 그제야 엄마가 아픈 것이다.


문제는 엄마는 아파도 엄마다.

나만 쳐다보는 눈이 6개나 있어서 단 하루도 맘 편히 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지만 둘째, 셋째 출산 할 때 일주일씩 빼고는 양가에 아이를 맡겨 본 적이 없다. 원래 부탁을 잘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친정엄마는 일을 하시고, 시댁도 가깝지 않은 터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지지고 볶았다.


그렇게 버텨오다가도 몸이 아플 때면 서러움이 폭발한다. 몸은 다 녹아 버린 촛농 같은데 집안 꼴은 엉망이고, 애들은 배고프다고 징징거리고, 엄마가 아프거나 말거나 놀아달라, 책 읽어 달라, 머리 묶어 달라, 장난감 찾아 달라, 쏟고, 싸우고, 울고 불고 기어코 아픈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야 만다.



난 지구력이 정말 약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마라톤 경기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이 마라톤은

한 번 쉬어 갈 수도, 경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마라톤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 경주를 계속 하는 이유는,




나에게는 하루 정도 쉬어 갈 수 있는 평범한 날이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에게는 쉬어 갈 수 없는 '생존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몸을 일으킨다.

하루를 달린다.

비록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더 이상은 못 뛰겠다는 말이 터져 나오지만

곤히 잠든 하루의 끝이 주는 감사로

하루를 달릴 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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