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어린이 병동

by 빛의골방







둘째는 어릴 때부터 참 왈가닥이었다.





첫째가 유독 조심성이 많은 아이여서 더 비교가 되었을까?

둘째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매일 온갖 것들을 쏟아댔다.

물, 우유, 주스, 심지어 식판도 뒤집어엎었다.


그뿐인가.

툭하면 넘어지기 일쑤. 혼자 넘어지면 다행인데 꼭 언니나 동생을 밟고, 치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성질은 또 얼마나 고약한지! 언니는 혼나면 엉엉 울고 끝나는데

이 녀석은 아무리 혼내도 끝까지 악을 쓰며 대들었다.




그런 둘째가 돌이 되기 전. 이제 막 기고 겨우 버티고 설 때쯤이었다.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는데,

'... 아니겠지?'

뭔가 쎄-한 느낌이 스쳤다.


아이와 눈 맞춤을 하는데 초점이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냥 아직 어려서 그런 걸 거야.'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보면서도 선뜻 병원을 가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더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둘째는 언니를 따라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고,

얼마 후 어린이집 선생님께 문자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 제가 조심스럽지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려요.

시아가 가끔씩 눈에 초점이 안 맞는 때가 있어서요.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번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막다른 골목을 만난 듯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음을 느꼈다.


결국 근처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간헐적 외사시'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직 어려서 조금 더 지켜보지만 아마 수술밖에는 방법 없을 거라고 하셨다.


'아직 두 돌도 안 지났는데..'


내 아이는 아닐 거라고, 아니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엄마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 3차 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동일했다.


큰 수술은 아니라고 하지만 너무 작은 아이가 다른 곳도 아니고

눈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계속 울컥하게 만들었다.


결국 한 바탕 펑펑 울고 나서야 결과를 받아들이고

소아 사시로 유명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큰 대학 병원들은 이미 대기가 몇 년씩 걸려 있어서 정보를 얻기 위해 맘카페도 가입했다.

카페에서 엄마들 왈, 소아 사시로 유명한 선생님께 초진을 받으려면

매일 병원에 전화를 해서 취소 자리가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매일 전화를 해봤지만

하늘의 별따기였다.


마음이 너무 초초했지만 아직은 당장 수술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 기다리더라도 예약을 해놓기로 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서울대 어린이 병동 소아 안과로 진료를 보러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교수님은 아이를 보자마자,


"아이고 예쁜 공주님~선생님이 눈 안 아프고 예쁘게 해 줄게^^"


라고 너무 따뜻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아직은 아이가 눈을 뜨는 힘이 있으니 치료를 하면서

좀 더 지켜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갈 때마다 눈물이 나는지...

이럴 땐 내가 'F'인 게 원망스럽다.

뭔가 자꾸만 다 '내 잘 못'인 것만 같아서..? 모르겠다.

그냥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눈물창고가 고장 난 느낌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자꾸 울컥거리게 된다.


그렇게 몇 년간의 치료 끝에 올해 4월에 둘째는 수술대에 올랐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도하며 기다리는데,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 보였다.

우리 딸 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엄마들이 보였다.

자기들도 힘들면서 어떻게든 우는 아이를 달래 보려고

안고 엎고 메고.

자기들도 불안하고 무서우면서

목소리는 또 어쩜 그렇게 침착하고 다정한지.


어떤 엄마는 오늘 수술하려고 포항에서 새벽에 KTX를 타고 왔다고 했다.

수술 전 금식을 해야 하는 아이를 새벽에 깨워서 기차를 타고, 내려서 또 택시를 타고

병원까지 왔을 생각을 하니 내 고생은 고생도 아닌 듯 여겨졌다.


한 시간쯤 흐르고 교수님이 먼저 나오셔서 결과 설명을 해주셨다.


"어머니~우리 시아 출혈도 많이 없고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이제는 평소보다 넘어지는 것도 적고 보는 것도 많이 편해질 거예요.

앞으로 안약 잘 넣고, 한 달 정도만 조심하면 이후부터는 물놀이도 갈 수 있어요^^"


순간 멍했다.


"아.. 선생님, 혹시 시아가 그동안 자주 넘어진 게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랬던 걸까요ㅜㅜ?"


"네, 공간 감각이 떨어져서 보는 게 편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유독 잘 쏟고 잘 넘어지는 아이를 보며,

"그만 좀 쏟아!"

"넌 왜 자꾸 넘어지는 거야?!"읔박도 질렀었다.

혼자 셋을 감당하기엔 나는 너무 여유가 없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또 한 없이 눈물이 났다.

'그래서 그렇게 넘어졌던걸.. 그것도 모르고 애만 혼내고.. 그러고도 엄마 자격이 있는 거야?!'

이놈의 자책은 죽는 날까지 못 버릴 거 같다.



몇 년간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보러 다니면서 병원에서 스쳐 지나간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엄마들이 있다.


아이가 아프면 왜 그렇게 다 '내 탓'같을까.

모든 엄마들 마음이 다 비슷할 거 같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고 말지, 차라리 내 팔에 꽂고 말지..

내 아이의 가녀린 손목에 꽂히는 주삿바늘을 보며

엄마는 가슴에 바늘이 꽂힌 다는 걸..


그렇게 엄마는 한 팔로 아이를 안고, 또 한 팔로 자책을 안고 살아간다.

고장 나버린 눈물샘을 가지고

사랑이란 책임의 무게를 진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깨를 주무르며

커가는 아이의 다리를 주무른다.


그렇게 엄마는 대신 아파줄 수도, 대신 살아 줄 수도 없는

한계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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