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미식가
나는 왜 뷔페에서
인생을 반쯤 남기는가
나는 미식가다.
하지만 많이 먹지는 못한다.
입맛은 호기심이 넘치는데,
위장은 유난히 겁이 많다.
그래서 늘 누군가의 눈총을 받는다.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뷔페는 왜 가?”
“한정식은 무리지?
그냥 간단히 먹자.”
그럴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진심으로 맛을 사랑한다.
단지 많이 못 먹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입이
나에겐 꽤나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첫 입엔 설렘이 오고,
두 번째엔 감탄이,
세 번째엔 후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네 번째부터는...
그냥 배가 부르다.
뷔페는 내게 양이 아니라, 꿈의 공간이다.
첫 접시는 가능성,
두 번째는 욕심,
세 번째는 체념, 그리고 네 번째는 물이다.
나는 접시를 들고 다니며 한입씩만 맛본다.
그러면 옆자리 친구가 묻는다.
“그게 뭐야, 시식이야?”
“응, 인생 시식 중이야.”
그렇게 말하며 웃지만, 사실 속은 복잡하다.
내 위장은 늘 내 욕심을 따라가지 못하니까.
나는 유난히 오감이 발달한 사람이다.
음식을 먹을 때, 미각만이 아니라
후각, 시각, 촉각, 감정까지 총동원된다.
입안에 스며드는 향이 코끝에서 춤을 추고,
음식의 색이 눈으로 먼저 맛을 보여준다.
한입 베어 물면,
부드럽거나 바삭한 질감이 손끝처럼 느껴지고,
그 순간의 온도가 마음을 건드린다.
그래서 나는 많이 먹지 않아도,
한 입으로 세상을 여행한다.
커피 한 모금에 아침의 공기를 마시고,
한 개의 사과에서 태양의 기운을 느낀다.
사람들은 나를 ‘적게 먹는 사람’이라 하지만,
사실 나는 누구보다 깊이 먹는 사람이다.
한정식 또한 나를 시험한다.
반찬이 스무 가지가 나올 때면
내 감각은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
눈으로 맛을 본 순간, 이미 배는 반쯤 찬다.
그때 메인 요리가 등장한다.
“이제 진짜 시작이에요!”
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외친다.
"메인은 이미 나갔어요.
제 위로요."
그리고, 다 먹지 못한 음식을 향해
조용히 마음속 인사를 한다.
“당신의 맛은 충분히 느꼈어요.
내 위가 좀 소심해서
다 표현을 못했을 뿐이에요.”
맛을 사랑하지만 많이 먹지 못하는 나는,
늘 잔칫상 한가운데서도 약간 외롭다.
그래도 괜찮다.
남긴 음식엔 미안하지만,
그 맛의 기억은 오래오래 곱씹으니까.
나는 고독해서 그래.
아니,
위가 작아서 더 그래.
뷔페의 문이 열립니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맛들,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접시들이 반짝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고,
당신의 손엔 접시 하나가 쥐어져 있습니다.
이제 당신의 선택은?—
A. 스테이크, 파스타, 초밥,
디저트까지 완주하며 “인생은 풀코스야!”를 외친다.
B. 가장 마음에 드는 두세 가지를 담고,
한입 한입 천천히 음미한다.
C. 음식 대신 향을 즐기며,
“이미 공기로도 배부르다”라고 미소 짓는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건 없다.
뷔페의 시간처럼, 인생도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니까.
중요한 건 접시가 아니라, 당신이 지금 맛있게 살고 있느냐는 것.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15《고독해서 그래》: 《맛은 많고, 위는 작아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