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자기를 바라보다
승리는 그렇게 말했어.
“쟤가 먼저 그랬어.”
“나는 그냥 밀었을 뿐이야.”
“내 잘못 아니야.”
선생님 앞에서도,
친구들 앞에서도
승리는 똑같이 말했어.
하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어.
넘어진 친구는 울고 있었고,
주변 아이들은
조용히 승리를 보고 있었지.
그 시선이 싫어서
승리는 더 크게 말했어.
“내 잘못이 아니야!”
집에 돌아온 뒤에도
승리는 계속 중얼거렸어.
“내 잘못 아니라고…”
“쟤가 먼저 그랬어…”
그 말은 점점 작아졌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 되었어.
그때,
누군가 옆에 다가왔어.
초록빛 옷을 입은 아이.
마렌이었어.
“왜 그랬어?”
“누가 먼저였어?”
나무라는 대신
승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어.
“지금 네가 믿고 있는 건
진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네가 만든 이야기야.”
승리는 화를 냈어.
“아니야! 진짜야!”
마렌은 고개를 저었어.
“그건 너를 지키려는 말이야.”
잠시 후,
마렌이 덧붙였어.
“그리고 너를 가두는 말이기도 해.”
승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그때,
작은 빛이 내려왔지.
투명한 날개를 가진 요정,
리아였어.
리아는 연못가에 피어 있던
노란 꽃을 가리켰어.
“이 꽃을 아니?”
승리는 고개를 저었어.
“수선화야.”
리아는 조용히 말했어.
“이 꽃은
자기 얼굴을 가장 오래 바라보는 꽃이야.”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꽃이라고도 불리지."
승리는 물었어.
“그럼 좋은 거잖아.”
리아는 조금 슬픈 얼굴로 말했어.
“그런데 너무 오래 보면,
진짜 얼굴이 아니라
보고 싶은 얼굴만 보게 돼.”
그날 밤,
승리는 혼자 앉아 있었어.
방 안은 조용했고,
그냥 우울했어.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승리는 거울을 보며 말했지.
“나는… 괜찮아.”
하지만 거울 속 얼굴은
조금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어.
그때
낮에 넘어진 친구 얼굴이 떠올랐어.
울던 모습.
그리고 자기가 밀던 순간.
머릿속에서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지
친구는 눈가가 빨갰어.
조금 뒤로 물러난 채 서 있었지.
승리는 눈을 감았어.
그리고 처음으로 그 말을 멈췄어.
“… 나…”
말이 목에 걸렸어.
잠깐의 침묵.
그리고 아주 작게,
“… 일부러 그랬어."
그 말이 나오자
가슴이 아프게 내려앉았어.
하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숨이 편해졌지.
다음 날,
승리는 친구 앞에 섰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했지.
“어제…
내가 일부러 밀었어.”
친구는 한참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어.
“… 왜 그랬어?”
승리는 대답하지 못했어.
괜히 속이 뒤틀려서 그랬는데 말이지.
하지만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어.
그날 밤,
마렌과 리아는 수선화를 바라보았어.
리아가 말했지.
“이 꽃은
자기 소임을 다했어.”
“빛이 꽃잎 사이로 천천히 번졌어.”
“정원에 따뜻한 바람이 아주 조금 불었지.”
수선화는 고요한 빛이 되어
잃어버린 정원으로 돌아갔단다.
정원 한편에
자기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꽃이
새롭게 피었어.
마렌은 그 꽃을 바라보며 말했고,
“인간의 진짜 마음은
말로 꺼낼 때
처음으로 숨을 쉬는 것 같아.”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서
우리가 아직 여기 있는 거지.”
잃어버린 정원은
오늘도 아이 하나의 진실로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