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8월 25일,26일

1592년 초고본에 적힌 편지글 - 백사 여량

by 지온x지피

二十五日 晴 辰時霧卷 到三千前洋 平山浦

萬戶呈空狀 幾到唐浦 慶尙右水伯繫舟相話

申時泊于唐浦宿 夜三更 暫雨


1592년 8월 25일



새벽 안개가 자욱했다.
그러나 진시(7~9시경)가 되자 안개가 걷혔고, 우리는 삼천포 앞바다를 지나 평산포에 도착했다.
그곳에선 만호가 나와 “적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올렸다.

우리는 당포 근처까지 이동했고, 그곳에서 경상우수사(원균)와 배를 함께 매고 대화를 나눴다.
신시(15~17시경)에는 당포에 배를 정박시켰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밤이 깊어 삼경(자정 무렵)쯤 되었을 때, 하늘에서 잠시 비가 내렸다.


밤하늘은 고요했으나, 내 마음은 아니었다.

장막 안에 누웠으되 눈은 감기지 않았다.
조용히 젖어오는 공기 속에서
바닷물인지, 하늘의 눈물인지 모를 빗소리가 들려왔다.





二十六日 晴 行到見乃梁駐舡 與右水伯相話

順天亦到 夕 移舟到巨濟境角呼寺前洋宿



1592년 8월 26일

오늘은 견내량에 도착하여 배를 정박시켰다.
그곳에서 경상우수사(원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순천 수군도 도착하였다.
해가 질 무렵, 배를 옮겨 거제 경계에 있는 각호사(거제시 사등면 오량리에 소재하는 신광사) 앞바다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초고본에 적힌 편지글

이 편지는 임진왜란 당시(1592~1593년경 추정),
관리 백사 여량(白沙 余良)이 조정에 올린
군사 보고이자 절절한 탄원문입니다.

글에는 전국이 왜군에 짓밟히던 시기,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라도 지역조차 버티기 어려웠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조선의 전쟁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병력과 민심이 얼마나 고통 속에 놓여 있었는지,
그리고 그 마지막 숨통이 어떻게 지켜졌는지를 절절히 느낄 수 있는 기록입니다.






초고본 편지 현대어 해석



삼가 여쭙습니다.

순행 중 평안하신지요?

지난번 뵈었을 때 평안하신 모습이 떠오르며,

여전히 평안하시리라 믿고 천만다행이라 여깁니다.




지금 왜적은 섬나라 일본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원래 바다 한가운데서 살아서,
혹독한 겨울이 와도 따뜻한 바람 속에 지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긴 옷은 제대로 펼쳐 입지도 않고,
겨울에도 짧은 옷만 입고 지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오래도록 머물고 있는 이곳은
그들이 익숙지 않은 낯선 땅, 매서운 겨울, 척박한 풍토입니다.

이들의 군량은 바닥났고,
전투 의지도 고갈되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반격할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일,
그 모든 가능성은 바로 이 시점, 지금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해는 저물고,
계절은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새해가 코앞인데도,

왜적을 물리쳤다는 소식은 아직 어디에도 들리지 않습니다.



한 구석에서 홀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신은,
서쪽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뿐입니다.

속이 찢어지는 고통,

간과 쓸개가 찢기는 듯한 분노가 가슴을 삼킵니다.


온 나라가 불타는 가운데,
지금까지 오직 전라도(湖南)만이

전란의 불길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우리의 군사력,
병력의 수송, 식량의 이동…
모두 이 땅, 전라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도
하나둘 쓰러지고 있습니다.
각 고을에서 군사를 징발하려고 하다 보니,
이젠 겨우 남은 병력조차 반으로 나뉘어 끌려가고,



행군 도중에 병사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죽거나 도망칩니다.


절반 이상이 흩어졌고,
남은 이들도 굶고 얼어붙은 채,
하나둘씩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정에서는
또다시 병력을 징발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젠 관아와 포구에 남아 있는 정규

병사들마저
전부 바닥났습니다.

큰 고을이라 해도

남은 병사는 고작 300명 남짓뿐이고,
나머지는 여기서 50명, 저기서 100명…
그마저도 강제로 끌려갑니다.




만약 규정에 따라 징발하지 않으면
관료와 관리들도 바로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니 다들 두려워하며
더 많은 병사를 내보내고,
그로 인해 온 고을이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두면 이 마지막 땅마저도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에는
더 이상 지킬 곳조차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또다시 병사를 뽑으라는 조정의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이젠 남은 군사라고 해봐야 다치거나 늙거나,
전투에 제대로 나서기도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사람들마저 또 징발하라는 겁니다.


지방의 진영과 포구,
마을마다 나뉘어 배치된 병사들,
고을 수비를 맡은 수졸(수비병)들까지—
이제는 아무 기준도 없이 무작위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결국 온 고을이 뒤집혔습니다.




백성들은 통곡하고,
사람들은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방어선은 더 이상 제대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길거리는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분명 지난 9월, 임금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군역을 피하려고 도망친 병사들이 있다 해도,
그 가족이나 이웃까지 함께 끌어가는 폐단은 모두 금하라."


그건 백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분부였습니다.
분명 친히, 정중히 명하신 바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명령이 무색하게 다시 마구잡이 징발이 시작되었고,
한 가족, 한 마을이 함께 끌려가는 일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나라의 여러 고을들은 지금
왜적에게 점령당하거나 무너졌습니다.
무고한 백성 수십만이 학살당했습니다.


왕의 도성과 종묘사직조차 위태롭습니다.

이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타들어 가고,
가슴이 찢기는 듯합니다.


어제는 10명의 병사를 방어지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는 조정의 명령이 내려오자,
다음 날 도착한 사람은 겨우 3~4명뿐이었습니다.

오늘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어제 10명이 방어선을 지켰다면,
오늘은 겨우 4~5명도 안 되는 병사만 남았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며칠 안에 모든 진이 텅 비게 됩니다.
장수는 혼자 성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예전 규정대로 징발을 계속하면
임금의 뜻을 거스르게 되고,
임금의 분부를 따르자니
적을 막을 병력이 남지 않습니다.

신은, 이곳의 사정을 기준으로
밤낮으로 고민하고 생각하며,
이 내용들을 체찰사에게도 보고했습니다.


한 집안 전체를 끌어가는 일,
그로 인한 민중의 고통은 너무나 심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임금의 명령을 따를 시간조차 없이,
현장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상황입니다.

제가 보고드리는 이 모든 말들은
결코 핑계가 아닙니다.
이건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며,
지금 이대로라면 백성도 못 지키고, 적도 막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남은 병사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들 때문에
집안 전체가 끊긴 가정도 많습니다.

군적 담당자 안서에게도 이 모든 상황을 보고했고,
조정 각 부서에도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라도 지역에 남아 있는 병사 수는,
경상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습니다.


좌우 수군(수영)에 있는 병사는 320여 명.

각 진과 포구에 남은 병사는 200명, 많아야 150명.


그게 전부입니다.
이게 호남의 마지막 방어선입니다.


지금 병적(兵籍) 명단에 남아 있는 인원을 조사해보면,
형식상은 방어 임무를 맡은 병사들로 되어 있지만,
그 중 상당수는 오래전에 이미 도망쳤거나 죽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실제로 확인조차 되지 않은 이들이
전체의 70~80%에 달합니다.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들까지 모아보아도
대부분은 늙거나 병들어,
전투와 수비에는 도무지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뿐입니다.

결국 할 수 없이
하나의 가족에서 여러 사람을 끌어다 채워야 하고,
숫자만 맞춰 병력이라 적고 배치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하다는 호소가 넘쳐나고,
지정된 방어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망치는 자도 있으며,
명단에는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나마 힘 있는 사람들을 징발하려 하다 보면
중복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거나,
여기서도, 저기서도 끌고 가려다
서로 부딪히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병력 점검일에도 출석하지 않는 이들까지 생겨납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신도 이런 병폐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왜적이 눈앞에 있고,
방어는 너무나 절박한 상황입니다.


예로부터 있어 왔던 이런 병폐를 문제 삼으며,
그렇다고 방어를 줄이거나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기존의 방식대로 다시 병력을 독촉하여 징발하고,
한 부류는 배에 태워 보내고,
다른 부류는 성을 지키게 하여,
이렇게 지금까지 다섯 차례 출정했고,
열 네 차례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이미 이 방식을 8달째 시행해왔습니다.
병력 편성은 그나마 정리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국경 방어선 하나만 뚫려도,
그 피해는 곧장 나라의 중심부까지 퍼진다는 것.

이는 이미 경험을 통해 검증된 사실입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우선은 어쩔 수 없이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
천천히라도 병력을 철저히 다시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백성과 병사들의 고통을 줄이는 일,
이것이야말로 지금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신 백사 여량이 아룁니다.

우리 조선에게 있어
전라도(湖南)는 마지막 희망입니다.

마치 옛 제나라에 있어
거(莒)와 즉묵(卽墨)이라는 도시
나라의 숨통을 겨우 유지했던 것처럼,
지금 조선은 전신이 병들고 쓰러져
겨우 팔 하나만으로 기맥을 유지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 마지막 팔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이제 더는 숨 쉴 곳도,
막을 곳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순간, 적의 말발굽이
국경을 쓸어버리듯 휩쓸고 들어올 것입니다.





거와 즉묵은 옛 제나라에서 나라가 다 무너졌을 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 성(도시)이었습니다.

여기서 끝까지 버틴 장군과 백성 덕분에,

제나라는 단숨에 사라지지 않고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죠.

조선시대 이 글을 쓴 사람은

지금 조선에게 ‘전라도’가 바로 그 즉묵과 거처럼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초고본 편지 원문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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