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일이 늦은 편인데도 어렸을 때부터 늘 키가 컸다. 그래서 언제나 교실의 맨 뒷자리 당첨이었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데 이런 고백을 하는 게 좀 그렇지만, 나는 학창 시절에 수업 태도가 그렇게 좋지 못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실 때 집중해서 수업을 듣지 못하고 늘 딴생각을 하거나 딴 공부를 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나는 자리 배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는 대상과 거리가 멀어지면 질수록 집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학생일 때는 한 반의 학생 수가 지금의 2배 이상이었고, 선생님들은 성적이 좋은 내가 수업 시간에 조용히 딴짓을 하는 것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셨다. 너무 멀어서 미처 발견을 못 하신 건지,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으니 굳이 말씀하지 않으신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문제 발생의 원인이 전적으로 나한테 있다는 전제 하에 생각하더라도, 맨 뒷자리에 앉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내가 자리 배치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키가 큰 아이든 작은 아이든 상관없이 반드시 모든 학생들이 모든 자리를 골고루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 반 23명을 기준으로 한 줄에 4~5명의 학생을 배치한다. 사실 5번째 앉는 것도 앞에서부터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기 때문에 4명까지만 배치하는 것이 베스트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총 6줄을 만들어야 하는데, 초등학교 교실의 가로 폭이 충분히 길지 못해서 책상 사이 간 이동이 불편하다. 아이들은 보통 책상 옆에 가방을 걸어놓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가방에 걸려서 넘어지게 될 위험도 커진다. 결국 최소한의 타협점이 총 5줄로 책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자리를 이동한다. 이동 방법은 동일하다. 오른쪽 옆으로 한 줄, 뒤로 한 칸. 이번 주에 2번째 줄 맨 앞에 앉았던 학생이 다음 주에 3번째 줄 2번째 자리에 앉게 되는 식이다. 이렇게 5주가 지나면 아이들은 첫째 칸부터 마지막칸까지의 자리에 골고루 앉아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때 학생들을 섞어서 새롭게 자리를 배치한다.
의외로 아이들은 교사와 가까이 앉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여러 자리를 경험하다 보면 뒤에 앉아있을 때와 앞에 앉았을 때의 집중력 차이를 직접 느끼기 때문에, 앞자리에 앉게 되는 것을 더욱 선호하게 된다.
다만 신체적인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리를 배치하기 때문에, 키 큰 친구가 맨 앞에 있으면 바로 뒤의 친구가 칠판이나 텔레비전이 안 보여서 좀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것 때문에 불편을 토로하면 일단 그 마음은 받아주되,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일주일 지나면 또 자리가 바뀌어서 지금보다 잘 보이게 될 거니까 조금만 참아보자. 모든 친구들이 다양하게 앉아봐야지.”
그러면 그 학생도 고개를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다. 자리가 골고루 바뀌는 장점을 생각하면 일주일 정도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리 배치에서 하나 더 강조할 점은 반드시 교사의 의도대로 앉는 자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아예 못을 박고 시작한다. 어떤 자리에 앉을지는 순전히 교사의 결정이라는 것을. 아이들의 희망대로 자리를 앉거나 뽑기 등을 통해서 무작위로 자리를 배치할 경우, 서로 만나지 않아야 할 아이들이 만났을 때의 결과는 몹시 참혹하다. 서로 너무 친한 경우 수업 중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극도로 산만해진다. 서로 너무 사이가 나쁜 경우 각자의 시야에 계속 상대방에 걸리기 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평화로운 교실 분위기를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한 학생들이 서로 근거리에 앉지 않도록 교사가 의도를 가지고 자리를 배치해야 한다.
이렇게 교사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심사숙고해서 자리를 배치하더라도, 예기치 못하게 특정 조합에서 마이너스 시너지 효과가 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학생들에게 사전 경고를 한 뒤, 그다음 문제 행동이 발생했을 시에 곧바로 자리를 바꿔버린다. 이런 사례를 몇 번 관찰하면 교사가 한 번 경고를 한 뒤에 아이들의 자세가 눈에 띄게 달라지게 된다. 교사가 으름장을 놓는 데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나도 ‘반드시 짝꿍은 있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자리를 배치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한 줄 자리를 몇 년 경험해보고 난 뒤에는 계속 그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수업 시간에 집중이 더 쉽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친구가 수업 중에 말을 걸거나, 뭔가 다른 행동을 하면 나의 집중력까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혼자 앉게 되는 경우에는 양 옆으로 신경이 덜 쓰이므로 훨씬 집중하기 편한 환경이 된다.
둘째, 학생들 간에 갈등 상황이 덜해진다. 어떤 선생님들은 “짝하고 갈등도 경험해 봐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익히는 거죠.”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그 말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갈등이 생길 사이나 상황은 짝꿍끼리가 아니어도 수도 없이 많다. 오히려 갈등이 생길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굳이 짝으로 붙여서 앉히는 것이 불씨를 더 키운다고 생각한다.
셋째, 자리 배치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교사의 의도를 반영하여 자리를 결정하게 되는데, 특정한 조합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배치에 어려움이 생긴다. 짝으로 매칭해서 앉게 되는 경우에는 파급력이 더 크기 때문에 두 명의 친구를 어떻게 배정해야 할지 더욱 고심할 수밖에 없다. 한 줄로 앉는 경우에는 서로 간에 문제가 있는 친구가 가까이 있더라도 짝으로 앉는 것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자리 배치 시 교사의 고민이 조금 덜어지게 된다.
이렇게 일자형의 책상으로 배치하는 것을 기본 틀로 수업을 하는 것에 2가지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이런 식의 책상 배치에서는 단순 일제식 수업만 진행되지 않을까?’이다. 하지만 수업은 교사의 편의나 책상의 배치 형태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에 따라 좀 더 효과적인 학습 형태가 있고 그것에 따라 책상 배치를 활용하면 된다. 각자 집중적으로 하나의 활동에 몰입해야 할 때가 있고, 짝이나 모둠원들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때가 있으며, 전체 학생들이 함께 움직이며 활동해야 하는 때가 있다. 교사는 어떤 수업 구성이 가장 효율적 일지를 미리 연구하여 해당 수업 시간에 적용하게 되므로, 일제식으로만 수업을 계획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불가능하다.
두 번째는 ‘책상의 배치를 바꾸는 것이 번거로우며, 이동할 때 수업의 분위기를 깨지 않을까?’이다. 이것 역시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학습 형태에 따라 책상을 이동하는 것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금세 익힐 수 있다. 나는 이동하면서 집중력이 깨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리 규칙을 활용하고 있다. 책상의 배치를 바꾸는 동안 학생들이 0의 소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책상 재배치가 완료된 후 아이들이 차분하게 앉아서 교사를 바라보고 있을 때에 모둠 활동의 시작을 알리면, 장난치거나 소란스러운 느낌 없이 곧바로 모둠 활동에 돌입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끼리 친하면 친할수록 가까운 거리에 배치하지 않는다. 비단 자리배치뿐만 아니라 조별 활동을 할 때나 체육 경기를 위한 팀을 짤 때도, 친한 친구들을 일부러 갈라놓는 편이다. 어차피 수업 시간 외에는 늘 꼭꼭 붙어 다니기 때문에, 수업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라도 좀 더 다양한 친구들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특히 여학생들은 자신만의 집단을 갖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데, 이런 또래 관계가 수업의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친한 친구와 같은 조가 되지 않을 때 눈에 띄게 불만을 표현하거나, 다른 친구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좀 더 엄격하게 지도하는 편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선생님의 권한이고 권리이기 때문에, 너희가 특정 친구들과 같이 활동하려는 욕심에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더 반복되면 그다음부터는 아이들 스스로 눈치를 보고 조심하며, 과하게 친구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