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칠순이 다가왔다.
자연스레 아버지 환갑잔치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서른을 바라보던 나이.
뒤늦게 대학을 가느라 친구들이 하나둘 자기 앞가림을 할 때, 난 취업도 못 한 채 초라한 시절이었다.
그런 나와 달리, 아버지는 내 나이에
이미 가족을 이루고 누나를 낳으셨다.
아버지 환갑은 조용히 지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으리으리하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현실은 30만 원도 빠듯했다.
근처 뷔페에서 식사하고 끝냈다.
어머니 환갑 때는 취업을 해,
외가 친척들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했다.
그때는 내가 식비를 결제했다.
그래서 이번 아버지 칠순만큼은,
제대로 챙기고 싶었다.
누나와 상의 끝에,
일인당 10만 원이 넘는 식당을 예약했다.
하지만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자,
가격을 듣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거긴 너무 비싸다. 싼 데서 하자."
나는 고집스럽게 예약을 취소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약간 더 저렴한 식당으로 바꿨다.
그게 아버지 마음을 덜 불편하게 하고 내 욕심도 채우는 절충안이었다.
모이기로 한 전날,
아버지께 드릴 사케 한 병을 챙기고 있었다.
"오빠, 평소엔 아버님 술 못 드시게 하면서, 이럴 땐 또 챙기네?"
콩알엄마 말에 머쓱하게 웃었다.
"이번엔 특별한 날이잖아."
아침부터 한 손에 사케, 한 손에 임산부 뱃지가 달린 가방을 메고 와이프와 기차를 탔다.
식당에 도착하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와 계셨다.
저렴한 데, 저렴한 데 하시던 아버지가
“이 동네에 이런 데도 있냐.”며 되물으셨다.
"얼른 들어가시죠" 라며
웃으며 식당에 들어갔다.
외삼촌 가족도 도착했다.
서로 안부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그날, 아버지와 나는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가족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아버지와 나 둘만 남은 기분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사케를 따라드렸다.
"아버지, 이거 가게에서 먹으면 한 병에 20만 원 넘어요."
"그래?"
아버지는 무덤덤하게 한 잔을 비우셨다.
"뜨근한 게 좋네."
그게 다였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 본가에 있을 때는 야구 이야기며 세상 이야기며 나눴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아버지의 관심사도 모른다.
그래서 잔이 비울 때마다
다시 따라드렸다.
"이번에는 아낀다고 상할 때까지
보관하지 마시고, 빨리 드세요."
어색해서, 술 이야기만 반복했다.
식사가 끝나고 칠순을 축하하는 떡케이크가 나왔다.
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으로 초를 끄셨고,
가족들은 그 뒤에서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칠순이 끝났다.
집으로 내려와,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응, 너희 아빠. 좋은 술 생겼다고 친구들이랑 마시러 가셨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때는 시큰둥하시더니,
결국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함께 나누고 싶으셨던 거다.
“그리고 너희 아빠, 벌써 손녀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뛰어오면 어떡하냐고 하시더라.”
엄마와 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의 관심사는 고향팀 야구 성적도,
비싼 술도, 본인 생일도 아니었다.
뱃속에 있는 콩알이었다.
아버지 나이 70에 첫 손주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쁘셨는지
등산을 하시다가 절이 나와서 기도를 드렸다 한다.
절에 한 번도 안 가본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급하게 전화해
절 하는 법을 물어봐서 알게 된 일이었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무덤덤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설레고 기대하신 것이었다.
좋아도 좋다고,
기뻐도 기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
그게 우리 아버지였다.
이젠 손주한테 마음껏 표현하셨으면 한다.
아버지, 다시 한번 칠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콩알이도 축하드린다네요)